북한 헌법상 최고 기관인 최고인민회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오는 10일 강행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교착 상태에 놓인 미-북 관계에 영향을 줄만한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됩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오는 10일 평양에서 열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선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데 이어 열린다는 점에서 북한의 향후 대내외 정책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전망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지난해 4월 열렸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에 대해 협상 시한을 그해 연말까지로 정하고 셈법을 바꾸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어 지난해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에 맞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을 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김 위원장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도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조 박사는 지난해 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김 위원장으로선 이렇다할 업적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가겠다고 한 ‘새로운 길’에 대한 구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발표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밝힐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조 박사는 그러나 김 위원장이 교착 상태에 놓인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만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레드라인’을 넘는 내용을 담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여러가지 면에서 봤을 때 그동안의 대외메시지의 톤도 그렇고 지금 판을 깨는 위험한 강수를 두기엔 좀 부담스럽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강력하게 미국을 비난하겠지만 그러나 협상의 판을 깨거나 전략적 도발을 확정적으로 예고하는 그런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김 위원장의 참석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김 위원장이 미국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을 여건은 조성되지 않았다고 진단했습니다.
임 교수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와 관련한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선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가 먼저라고 강조한 데서 보듯 현 상태에선 미국에 대해 새롭게 내놓을 메시지가 딱히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더욱이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메시지를 내기 보다는 미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임 교수는 예상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코로나 대응 때문에 집에 불이 난 거잖아요. 미국이라는 큰 집에 불이 난 상황에서 북한이 과거처럼 미국을 특정해서 보낼 수 있는 메시지는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봅니다. 지금은.”
임 교수는 다만 김 위원장으로선 오는 10월10일 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치르겠다고 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 사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대내 결속과 자원 동원을 위해서라도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해 연설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반면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이상숙 교수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한 것은 새 대의원 선거를 치른 뒤 첫 회의였기 때문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이번 회의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두 번째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8월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수는 이번 최고인민회의가 대미 메시지를 낼 가능성보다는 향후 대미 협상을 준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숙 교수] “지금은 북한이 본격적인 협상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보이는 거죠. 당장 협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내부적으로 협상 라인들을 구축하고 준비하는 단계를 밟겠죠. 왜냐하면 북한 외무상도 바뀌고 새로운 라인이 구축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일부의 변동은 있을 수 있겠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도 김여정 제1부부장이 지난달 한국 청와대에 대한 비난 담화와 트럼프 대통령 친서에 대한 답장 성격의 담화를 자신의 이름으로 잇따라 발표하는 등 대외관계에서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다는 점에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선 새 대미 협상 라인 구성과 관련 기구 개편 여부를 눈 여겨 볼 대목으로 꼽았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리선권 대남 라인이 외무상으로 옮겨갔고 또 지금 처음 확인된 대남협상국이 신설이 됐기 때문에 큰 틀에서 대외담당 기구, 조직 개편 이런 부분들이 감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이 부분이 어떤 형태로 공개가 될지, 또 김여정 부부장의 위상이 기구개편과 어떤 식으로 연계될지 그 부분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최고인민회의는 명목상의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으로, 매년 4월쯤 정기회의를 열어 헌법과 법률 개정 등 국가정책의 기본원칙 수립, 주요 국가기구 인사, 전년도 예결산과 올해 예산안 승인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통상 1년에 한 번 열리지만 2012년과 2014년 그리고 지난해엔 예외적으로 두 차례 열렸습니다. 특히 지난해엔 3월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서 687명을 선출한 이후 4월과 8월 두 차례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