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연평도 사건과 관련한 북한 지도자의 사과는 한반도의 긴장을 유발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밝혔습니다. 유엔대사와 하원의원을 지내며 북한과 여러 차례 협상에 나섰던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25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남북간 긴장 상황은 미-북 관계 개선을 더욱 어렵게 한다며, 김 위원장의 이례적인 사과가 미-북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는 미국의 대북 인도적 협력으로 이어지길 희망했습니다. 안소영 기자가 리처드슨 전 주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국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북 관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가운데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여파로 북한은 더욱 문을 걸어 잠그는 양상입니다. 꽉 막힌 미-북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먼저,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진 상황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민간인이 북한 군인들에 의해 사살되고 불에 태워진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죠. 그런데 이에 대해 김정은이 극히 특이하고 이례적으로 공식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자칫 남북관계가 극도로 냉각될 수 있는 상황에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였고, 한국과 긴장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좋은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공격, 위협에 대한 1차 피해자는 3만 명 가까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입니다. 따라서 남북간 긴장은 미-북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가 됩니다. 당연히 이번 사건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상황을 더이상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북한의 이번 신호를 계기로 양국 관계가 호전돼야 합니다. 미-북 관계를 움직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기자) 미-북 대화가 장기간 재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북한 당국이 미국의 대선 결과가 나오기까지 관망하겠다는 선택을 한 건 분명합니다. 북한은 한 달 정도 남은 대선 이후에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결정할 텐데요, 따라서 지금은 사실 많은 것을 기대할 시점은 아닙니다. 그저 한반도 내 긴장이 촉발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후 차기 미 행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2021년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북한과 ‘소프트 외교’를 시작해야 합니다. ‘소프트 파워’를 보여줘야 합니다. ‘합의 도출’(consensus building)과 ‘신뢰 구축’(regain trust) 을 위해서 말이죠. 네 가지 정도로 요약을 해 보고 싶어요. 첫째, 제가 부시 행정부 때 한 일인데, 북한과 미군 유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5천300구가 여전히 북한에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 공동 발굴을 재개해야 합니다. 또한, 인도적 문제 협력이 필요하고요, 미국 거주 한인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울러, 종교자유의 메시지를 동시에 줄 수 있는 교황의 방북 추진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남북 군사분계선 DMZ에 교황을 초청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다음 행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전에 이런 조치들을 먼저 추진하길 희망합니다. 이것들이 바로 ‘소프트 외교’입니다.”
기자) 대선을 앞두고 깜짝 놀랄 만한 사건,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어떤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미국 대선 향방을 가를 중요한 것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의 세 차례 TV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반드시 북한과 관련됐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북 양측 모두 대선 전 정상회담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김여정의 방미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봅니다. 또한 북한은 대선 전 뭔가 큰 이벤트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거죠. 실무급 협상도 오랜 기간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꽉 막힌 미-북 관계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미국과 북한이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양측 모두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첫째, 정상간 만남이 아닌 실무진 협상을 통해 ‘점진적’ (비핵화) 조치를 이행해 나가라는 겁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유능한 협상가입니다.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누구나 알 겁니다. 북한이 먼저 ‘완전한 비핵화’를 하거나, 미국이 먼저 대북 제재를 모두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상대방이 절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합의를 보려고 한다면, 답은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야 하는 겁니다. 미국이 북한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소프트 파워’입니다. 인도적 협력, 저는 무조건 북한을 지원하겠다, 돕겠다는 제스처 보다는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원과 관련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여러 차례 북한에 제안을 하고 있지만 북한이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문을 열 게 할 수 있을까요?
리처드슨 전 주지사) “북한의 문을 열 수 있는 건 전염병 방역 분야가 가장 유력합니다. 자연재해 피해 복구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한 채 장기간 국경을 폐쇄하고, 중국과 국경을 맞댄 상황에서 분명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뿐 아니라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북-중 국경에서 들어와야 하는 화물들이 쌓여 있습니다. 검역 기간이 길기 때문인데, 미국은 이 화물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죠. 수화물의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방법에 대한 현실적 지침을 북한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것을 북한에 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자)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해 북한과 협상한 경험을 갖고 계십니다. 북한과 협상해야 하는 미국 관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리처드슨 전 주지사) “북한과의 협상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독특한 건 사실입니다. 다 온 것 같다가도,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얻은 교훈은 북한이 만약 성명(statement)을 발표할 경우, 마지막 문장이나 특히 유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로부터 꽉 막힌 미-북 관계에 돌파구를 열 방안과 향후 미-북 관계 전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