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서 받은 친서 일부가 미 언론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정상 간 관계에 의존한 ‘톱 다운 외교’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중 지금까지 전문이 공개된 것은 모두 3통입니다.
지난 2018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1통을 올렸고, 최근엔 미 ‘CNN’ 방송이 자체 입수한 김 위원장의 서한 2통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두 서한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격찬하는 화려한 ‘미사여구’와 더불어 김 위원장이 정상 간 만남, 즉 ‘톱 다운’ 방식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먼저, 2018년 12월 25일 자로 된 서한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200일이 지났지만 그 역사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는 김 위원장의 소회로 시작합니다.
이어 “그 날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고대한다”면서“전 세계는 머지않은 미래에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저와 각하의 또다른 역사적인 만남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동료들과 관계 기관에 두 번째 정상회담 준비를 서두르도록 지시했다”며 다음 회담에서 “좋은 결과를 이뤄낼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서한은 양측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이미 교감을 주고받은 상황에서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 해 12월 초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G20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에게, 2차 미-북 정상회담이 1월이나 2월에 열릴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또 회담 장소로 세 군데를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회담 개최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은 김 위원장의 친서에서도 드러납니다.
“장소를 놓고 서로의 입장만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것처럼 보이면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북 고위급 접촉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측은 전달(2018년 11월) 뉴욕에서 ‘폼페오-김영철’간의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가 전격 연기됐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친서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초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그 사실을 공개하며, “많은 진전을 이뤘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녹취:트럼프 대통령] “I just got a great letter from Kim Jong-un. We’ve made a lot of progress with North Korea…”
이렇게 두 정상은 친서 교환 등을 통해 관계를 이어가며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헤어졌습니다.
‘CNN’이 공개한 또다른 친서는 이로부터 약 100여 일이 지난 6월 10일 작성된 것입니다.
이 서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에 대한 소감과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6월 14일) 축하로 시작합니다.
북한 측에 ‘노딜 굴욕’을 안겨준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해선“103일 전 하노이에서 함께한 모든 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앞서 4월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미-북 협상과 관련해 ‘연말 시한’을 제시하면서, 하노이 회담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됐다며 불쾌함을 표출했던 것과는 전혀 톤이 달랐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김정은 위원장]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있기는 있는가 하는 데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한 계기로 되었습니다. “
하지만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는 미-북 정상 간 관계에 거듭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서로의 깊고 특별한 우정은 미-북 관계의 진전을 이끄는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며, “당면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줄 것으로 믿는다”는 겁니다.
또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관련해 “과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우리의 독특한 스타일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만남”이었다며, 이 만남에서 “당신이 보여준 의지와 결단을 여전히 존중하며 거기에 희망을 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상호 신뢰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는 의지와 더불어 위대한 일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마주 앉을 그 날이 조만간 올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런 날은 또 올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정된 한국 방문 기간 김정은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김정은에게서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다”면서 북한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으며 김 위원장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답했습니다.
[녹취:트럼프 대통령]“I think North Korea has tremendous potential. And the one that feels that more than anybody is Kim Jong Un.”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을 계기로 전격 성사된 판문점 회동도 정상 간 이런 교감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두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 27통의 내용을 담은 `워싱턴 포스트’ 밥 우드워드 부편집장의 신간 `격노 (Rage)는 오는 15일 공식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