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직 관리들 "미북대화 집착 말고 압박 강화해야…형식적 대화 무의미"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왼쪽부터)가 21일 서울에서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미한일 북 핵 수석대표 협의를 했다.

북한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요구를 일축한 가운데 워싱턴에서는 대화 재개를 위한 어떤 유인책도 제공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비핵화의 ‘큰 그림’을 제시하며 외교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물리적 대화 재개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라는 지적입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 당국의 잇따른 담화 발표를 주시하며 미-북 대화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워싱턴에서는 대화 자체가 목적이 돼 가는 상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습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북한의 입장 발표에 일희일비하거나 추가 유인책을 고려하는 대신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북한의 행동 변화를 꾸준히 압박하는 것이 현실적 대응책이라는 제안이 나옵니다.

북 핵 문제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대결과 대화 국면을 최전선에서 두루 겪었던 미국의 전직 외교 관리들의 위기관리 경험에서 나온 조언으로, 2년 넘게 교착상태에 빠진 미-북 대화 재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데 방점이 찍혔습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북 대화의 즉각적인 재개 전망은 밝지 않지만,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북한의 성명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성명은 발표 순간 외에는 유효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I think the prospects for any immediate resumption of talks are not good right now. That said, I would caution your listeners in listening too carefully to North Korean statements, because they can change very quickly. So I would not assume that statements are valid for the rest of the time.”

앞서 북한은 지난 22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명의 담화에서 미-북 대화 재개를 기대하는 미국을 향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릴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다음날 리선권 외무상을 통해 “우린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힐 전 차관보는 “중요한 것은 북한 쪽에서 상황을 진전시킬 의지가 있느냐인데, 나는 여기에 회의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열악한 경제 상황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이 언제든 셈법을 바꿀 수 있지만, 현재로선 조기 대화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The question is is there any interest on the part of the North Koreans that could develop and right now I'm rather skeptical about any early resumption of talks but not just because of North Korean statements, which as I said could change tomorrow. The issue is—I don't think North Korea sees any advantage right now in talks. Their economy is not performing very well, and they have many problems and so they may change this calculation, but for now, I don't see them interested in it.”

결국 북한 외교 당국자 몇 명이 심각한 얼굴로 협상장으로 걸어들어오는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들고 오느냐가 관건이라는 건데, 따라서 단순히 대화로 ‘초청’하기 위한 유인책 제공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지난 2007년 5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이 협상도 하기 전에 항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관리가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 만큼 공은 여전히 북한에 넘어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 North Koreans are asking for a surrender, if you will, prior to a negotiation, and that's not going to happen. Washington has already made very clear its preparedness to engage with North Korea in talks. So the message has been quite clear. It's from the president right on down through the ranks. A number of US officials have made it very clear that there is a willingness and a preparedness to engage in talks with North Korea. And so the ball is really still in North Korea's court.”

이어 “미국은 언제 어디서든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밝히는 것 외에 추가 메시지를 내거나,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럴 경우 북한과 어떤 대화에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협상을 원하면 스스로 걸어 나올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f I were in the administration, I would be arguing against making any additional statements beyond what's already been said about U.S. willingness to engage in diplomacy. What I would suggest is just to hold off, if anything, repeat the messages that have already been put out there about willingness to engage anytime, anyplace but certainly not give away any concessions or offer any inducements. Because that immediately puts you on a pretty bad footing in any talks with North Korea. If North Korea wants to come to the table, they will come to the table.”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미-한, 미-일, 미-한-일 북핵수석대표 협의 참석차 19~23일 닷새간 한국을 방문해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이어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도 북한의 잇따른 대화 거부에도 외교에 열려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도 24일 기자들과 만나 리 외무성 담화에 대해 “특별히 논평할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며 “다만 정부는 이미 여러 계기에 한반도 정세를 평화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가장 좋은 길은 대화와 협력에 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직 관리들은 미국이 대화 의지를 거듭 분명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미-북 대화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한국 정부의 기대 등을 고려해 북한에 모종의 유인책을 제공하거나 타협점을 모색해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낮은 단계의 관여를 성사시키는데도 보상을 제공할 경우 모든 협상 단계마다 선물의 크기를 늘려야 하고, 정작 회담은 ‘비핵화할 생각 없다’는 북한의 기존 입장만 확인하고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렸습니다.

지난 2019년 10월 스톡홀름의 북한대사관에서 미북 실무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하는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오른쪽)와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힐 전 차관보는 “바이든 행정부는 단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My own personal view is that the Biden administration should not be making concessions just to get North Korea to come to the table…because if that's all we're asking of them, they'll just say no at the table…saying ‘no’ away from the table and saying ‘no’ at the table is really not a difference that's worth trying to achieve.

“오직 대화 복귀만을 요구할 경우 북한은 대화 테이블에서도 (비핵화에 대해) ‘노(No)’라는 말만 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 전에 ‘노(No)’라고 말하는 것이나 대화 테이블에 앉아 ‘노(No)’라고 말하는 것이나 아무 차이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힐 전 차관보는 “따라서 북한이 진지한 협상을 할 것이라는 조짐을 먼저 봐야 한다”며 “현재까지 그런 조짐은 안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So I think we need to see some indication that they will negotiate seriously and so far I don't see that. Perhaps there can be some discussion of what would happen once they get to the table, but I would be careful about making concessions just to get them to the table.”

그러면서 “막상 대화가 재개되면 어떤 조치가 뒤따를지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겠지만,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최근에도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의 선순환적 발전’을 강조했습니다. 23일 공개된 미국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며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제재 완화와 미-한 연합훈련 축소를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은 지난 6일 “한미 연합훈련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고 추가적으로 고조시키는 형태로 작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에 빠르게 나오도록 유인하는 의미에서 대북 제재 완화를 촉매제로 활용하자”고도 말했습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언젠가부터 연합훈련은 불가침의 영역이 됐다”며 “한반도 비핵화라는 전략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방법을 언제든지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24일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한미 연합 훈련 축소·조정 문제 등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북한이 한국에 가장 바라는 것들이고, 따라서 미국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오려는 이유는 바로 제재 완화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at's exactly what North Korea wants Seoul to be doing right now, is making these suggestions, and that is precisely why the United States should not do any of those things. North Korea has an interest in coming to the table because they're seeking sanctions relief and they're seeking a number of other things. And so to get into this game of making offers and proposals and suggestions and offering inducements for North Korea, I think, is a really bad idea.”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유엔의 11개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는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에 좀 더 양보할 것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Since North Korea, which is in violation of eleven UN resolutions, is refusing dialogue, some have advised the Biden administration to offer yet more concessions. That's the wrong policy. The US over the years has offered many concessions military, economic, security, law enforcement, and it didn't lead to a breakthrough on diplomacy. For example, for the last four years we've curtailed or cancelled military exercises, and it didn't lead to any reciprocal diplomatic or security gestures by the North.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군사, 경제, 안보, 법 집행 부문에서 오랫동안 북한에 많은 양보를 했지만, 이는 외교적 돌파구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지난 몇 년 동안 미-한 연합훈련을 축소하고 취소했지만, 이 역시 북한의 외교적, 안보적 상호 조치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과 북한 담당 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현재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핵과 미사일 등 미국과 유엔에 의해 금지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Currently it seems not interested in talks with the United States but at the same time they continue their activities—their nuclear missile and other prohibited activities that are prohibited by the United Nations, not just by the United States.”

하지만 “추가 대북제재가 발동되지 않아 압박 동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와 논의해야 할 주제가 핵과 미사일 문제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압박 강도를 늘리는 것이 다음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Unfortunately, the pressure has continued to reduce because the United States and other countries are not issuing new sanctions. So I think the next step would be to increase the pressure on North Korea to remind them that talking about these issues is something that they need to come back to the table on.”

다만, 워싱턴에서는 2018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재현된 미-북 대화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핵 보유고만 늘릴 것이라는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실제로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14일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비롯해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 9개 국가를 핵보유국으로 분류하면서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는 40~50개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불확실한 ‘추정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난해보다 10개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대럴 킴벌 미국 군축협회(ACA) 사무총장은 “북한이 대화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핵과 미사일 역량을 개선할 시간만 벌어주는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대화가 성사될 경우 북한에 무엇을 제안할 것인지 더욱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협상에 복귀해 행동 대 행동 방식의 합의를 추진하는 것이 왜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대럴 킴벌 군축협회 사무총장] “Waiting for North Korea to come to talks, I'm afraid, is only going to allow North Korea to continue to improve its nuclear and missile capabilities…The Biden administration needs to be more forthright about what its proposals are. It needs to make it clear to North Korea what it is willing to propose, if there were talks. That's not negotiating in public but that's making it clear why it's in North Korea's interests to return to the negotiating table to work out an action-for-action type of agreement.”

킴벌 사무총장은 “이는 연합훈련 유예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원하는 보다 정교한 비전을 펼쳐 보여달라는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대럴 킴벌 군축협회 사무총장] “It is not as simple as simply pausing the military exercises. It is laying out a more sophisticated vision for what the new administration would like to see.”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과 리선권 외무상의 잇따른 담화가 그런 비전에 대한 기대와 요구를 담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북한에 다가오려면 미국이 첫걸음을 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며 “한국, 미국 모두의 대화 제의를 일축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에 먼저 양보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I think because the Biden administration had suggested that these were positive developments that Kim Yo-jong and then the foreign minister sort of quickly responded by saying ‘No, this doesn't mean they're willing to have dialogue that the US must continue to have take the first step or steps to reach out to North Korea.’ The Biden administration has tried repeatedly to have dialogue with no conditions anywhere, anytime, but North Korea, again, has rejected dialogue with both Seoul and Washington unless the Biden administration offers concessions even before talks.”

이어 “미국은 북한과 언제 어디서든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계속 말해야 한다”면서도, “조건없는 대화는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예전에 같은 직책에 있었을 때부터 되풀이 한 말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So, the US should continue to say we're willing to have dialogue anywhere, anytime. You know that's a phrase that Sung Kim used back when he had this same job before saying there were no preconditions for discussions at his level, and even back then as now that the North is the one that refuses to have dialogue. So we should continue to keep the door open for dialogue, show that we're interested in it. And in the meantime maintain the military deterrence against the North Korean threat as well as maintaining enforcement of US laws and then UN resolution sanctions.”

클링너 연구원은 “따라서 미국은 대화의 문을 계속 열어놓되,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유지하고 미국과 유엔 제재를 계속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