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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연이틀 대화 일축 담화…전문가들 "당분간 미북협상 재개 힘들 것"


19일 북한 평양에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을 관철하자는 내용의 구호가 걸려있다.
19일 북한 평양에 당 제8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을 관철하자는 내용의 구호가 걸려있다.

북한이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일축하는 담화를 연일 내놓으면서 미-북 협상 재개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협력 카드를 활용하면서 경우에 따라선 미국과의 대치 국면으로 상황을 전개시키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리선권 외무상은 23일 담화를 내고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낸 담화에 대해 “외무성은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미국의 섣부른 평가와 억측과 기대를 일축해버리는 명확한 담화를 발표한 것을 환영한다”라고도 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22일 담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당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언급한 데 대해 ‘흥미로운 신호’라고 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반응에 “꿈보다 해몽”이라며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의 대외정책 핵심 인사들이 이처럼 연이틀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거부하는 담화를 낸 것은 미-북 대화 재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다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여정 부부장 담화와 마찬가지로 리선권 외무상의 담화 또한 단 두 줄의 짤막한 메시지라는 점, 그리고 미국에 대한 직접 비난을 삼가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무의미한 접촉을 하지 않겠다고 한 리 외무상의 언급을 주목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무의미한 접촉이라는 것은 결국 사전에 상대방이 어떤 셈법을 갖고 어떤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할 의향이 있는지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하러 나가는 자리, 그래서 만나서 서로 들어보는 자리, 이런 자리는 나가지 않겠다는 거에요. 그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취하고 있는 아주 일관된 태도에요.”

전문가들은 북한의 연이은 입장 표명으로 미뤄 당분간 미-북 협상이 재개되기는 힘들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두 번째 담화가 강경파로 분류되는 리선권 외무상 명의로 나온 것은 현 시점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큰 비중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습니다.

협상 재개에 보다 관심이 있었다면 대미 협상의 최전선에 있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나섰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 내부적으로도 명분상 조기에 미국과 대화에 나설 수 없는 형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지금은 북한도 대화를 하기가 국내적으로 명분이 없다니까요. 자력갱생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상반기도 안 끝났는데 바로 입장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자력갱생의 성과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9월 정도 돼야 ‘도저히 자력갱생으론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고 그 시점이 연합군사훈련도 끝나고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갖기 좋은 시점이에요.”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박사는 이번 담화들에는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그만큼 현 시점에서 대화에 나서려는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차 박사는 또 연속 담화가 다분히 대남 메시지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며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의 초조함을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박사] “대외 메시지 측면에선 자신들이 먼저 양보해서 대화하진 않겠다는 의지고요, 대남 메시지는 만약에 한국이 미-북 대화를 중재하거나 촉진하고 싶으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비롯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카드를 한번 더 미국에 강력히 요구하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민간연구소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중국과의 협력 카드를 활용해 미국과의 대화에 속도를 조절하려고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정 센터장은 북한이 경제난 심화로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을 고려할 수도 있지만 최근 중국과의 협력관계가 강화되면서 미국과의 대화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정 센터장은 다음달 1일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 기념일, 그리고 같은 달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 기념일 등을 계기로 고위급 인사 교류 등을 통해 협력의 수준을 한층 높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2018년만 하더라도 ‘선중후미’ 전략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죠. 미국과 협상하기 전에 중국과 먼저 상의해서 협상에 나가고, 그런데 지금은 ‘통중배미’ 그러니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엔 중국하고만 잘 할 수 있으면 미국과의 회담은 필요 없다, 그런 입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민 박사도 미국의 대중 압박이 거세지면서 북-중 간 전략적 교감이 커질 수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북한이 미국과 대치하는 국면으로 상황을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당 전원회의에서 “최근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된 변화”를 언급하며 “유리한 외부적 환경을 주동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한 발언도 이 같은 북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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