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신종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 요양원에 마스크 7천 장을 기증했습니다. 자유와 희망을 선물해 준 영국 정부의 전염병 퇴치 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한 것으로, 탈북민들이 영국인들에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영국에 살고 있는 탈북민들이 잉글랜드 북부 요양원 7곳에 의료용 일회용 마스크 7천 장을 전달했습니다.
영국은 유럽 내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국 중 하나로, 정부의 힘겨운 전염병 대응과 퇴치 노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기증에 앞장선 탈북민 박지현 씨는 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들을 받아준 영국이 신종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매일 뉴스에서 사망한 숫자를 들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모든 탈북자 분들이 영국에 살면서 영국 국민들과 정부에 감사함을 전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저희들을 난민으로 받아주고 자유인으로 살게 해준 영국에 감사함을 표하게 됐습니다.”
박 씨는 전 세계적으로 부족 대란을 겪은 마스크는 영국에서도 구하기 어렵고, 특히 요양원 사정이 가장 열악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지난 4월 각 요양원에 기부 의향을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스크는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에게 지원을 받았고, 영국에 사는 탈북민 700명의 이름으로 전달됐습니다.
늘 정부의 도움을 받던 탈북민들이 영국인들에게 직접 도움을 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박지현 씨는 이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영국인들도 탈북민이 어려움을 함께 하고 있고, 또 같이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또한 고통스러웠던 자신들을 관대하게 안아준 영국인들에게 자신들도 같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박지현 씨는 탈북민들도 자신들이 영국의 일원이라는 당당함을 갖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이 기회를 통해서 탈북민들도 영국 사회에서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 말고, 영국에서 당당하게 사시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최근 전염병으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이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싸우자고 했다면서, 이 말을 듣고 고향에 두고 온 북한 주민들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박 씨는 북한은 여전히 이번 전염병 감염자가 없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모두 희망을 잃지 말고 꼭 고난을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998년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체포, 그리고 강제 북송과 재탈북을 경험한 박지현 씨는 2008년 영국에 난민으로 정착했습니다.
이후 유럽 각국을 돌며 북한 인권 실상을 소개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박 씨는 2018년 아시아여성상 대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국제엠네스티 영국지부가 신설한 엠네스티 인권상을 받았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