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6.25 진실 밝히려는 목소리 커져"

서울에서 24일 열린 '6.25 남침의 진실' 세미나. 왼편에서 세 번째가 선즈화 중국 화동 사범대 교수 (코리아정책연구원 제공)

중국에서 6.25전쟁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학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전쟁이 북한의 남침임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의 입장도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런 움직임이 전쟁 역사를 왜곡하는 북한 당국의 선전선동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화동사범대학교의 선즈화 교수는 24일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6.25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 내 시각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남침 사실을 부인하던 기존의 입장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고, 학계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선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기밀해제된 옛 소련 문서와 중국 자료를 분석해 6.25전쟁이 김일성 주석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을 확인한 대표적인 중국 학자입니다.

앞서 중국 정부의 국책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도 지난 12월 발간한 `2014 정세보고서’에서 “1950년 소련의 지지와 중국의 묵인 아래 북한이 군사행동을 개시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고서가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국책연구기관이 북한의 남침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당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아직 북한의 남침 사실을 공식 인정하지 않은 채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선 교수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북-중 관계를 고려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외교부가 지난해 6.25전쟁을 기존의 ‘항미원조’ 란 표현 대신 ‘조선전쟁’이라고 쓴 이유는 중국의 역할을 축소하기 위한 의도라고 풀이했습니다.

한국 고려대학교의 유호열 교수는 ‘VOA’에, 6.25 전쟁을 바라보는 중국 내 기류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호열 교수] “중국의 변화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선 교수 같은 분이 이런 자료를 갖고 해외에서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만 봐도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전쟁이나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용인하는 허용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유 교수는 중국의 학계 등 민간 분야에서 북한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전통적 우호 중시보다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은 유엔 기록 뿐아니라 냉전 종식 후 기밀해제된 옛 소련 정부의 여러 문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특히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94년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한 수 백 쪽의 외교문서와 후르시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자서전 등은 북한의 남침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문서들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스탈린에게 무려 48 번이나 남침 승인을 요청했고, 스탈인은 미국의 개입 등을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남한을 미국의 동북아시아 방위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당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이른바 ‘애치슨 라인’ 선언 이후 입장을 바꿨습니다.

이후 스탈린의 지원과 마오쩌둥의 묵인 아래 북한의 남침이 이뤄졌고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 표결을 거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의 전문가 3 명이 지난 2009년에 펴낸 ‘한반도’란 제목의 책에도 자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처럼 당시 외교문서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4년, 1949년부터 55년까지의 외교문서를 최초로 공개해 관심을 끌었지만 6.25 전쟁 관련 문서는 제외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롄정바오 당시 중국 외교문서보관소장은 “6.25전쟁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어서 공개할 경우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유호열 교수는 6.25전쟁에 대한 중국 내 기류 변화가 이미 북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유호열 교수] “중국에서 나온 논문이나 저서가 이미 많이 배포돼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북한 학자나 북한 외교관들은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영문 자료나 러시아 자료, 거기에 중국 자료까지 6.25전쟁의 개전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고 그 후 진행 과정에서도 중국과 소련의 역할을 지적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들이 북한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굉장히 차이가 나는, 그래서 북한 스스로 왜곡된 부분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그런 상황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 관영언론들은 전쟁 64주년을 맞은 올해도 6.25 전쟁이 `미제와 남한 괴뢰패당의 침략전쟁’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녹취: 북한 조평통 대변인, 조선중앙TV] “지난 조선전쟁이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압살하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전세계를 제패하려는 야망 밑에 미제와 그 주구인 리승만 도당이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일으킨 침략전쟁이란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탈북자 출신인 세계북한연구센터의 안찬일 소장은 외부 정보와 더불어 소련과 중국 학자들까지 풍부한 자료로 전쟁의 진상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부의 이런 선전 효과는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안찬일 소장] “러시아에서 많은 자료들이 공개된 데 이어서 지금은 직접 중국 학자들이 나서서 증언하기 때문에 북한의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에게 상당히 충격을 주고, 그런 검증 과정을 통해 결국 김일성은 북조선 인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 확인되기 때문에 현재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