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북한과 중국이 우호조약을 체결한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올해 별다른 기념행사를 열지 않는 등 과거와는 다른 분위깁니다. 전문가들은 두 나라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조-중 친선의 노래] “우리는 미더운 형제 피로써 맺은 전우들 조-중 친선 뜨거운 정을 가슴마다 지녔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지난 1961년 7월11일 베이징에서 ‘조-중 우호협력원조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은 상대 국가가 제3국의 침략을 받으면 전쟁에 자동 개입하고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양국이 개정 또는 효력의 상실에 합의하지 않으면 효력이 (자동) 유지된다고 명시한 이 조약을 북-중 혈맹관계의 대표적 증표로 선전해 왔습니다.
두 나라는 또 조약 체결일인 7월 11일에 해마다 다양한 기념 행사를 열어왔습니다.
상호 대표단을 파견해 우의를 다졌고 중국 관리들은 평양의 우의탑을 찾아 헌화했습니다. 또 평양과 베이징 주재 양국 대사관에서는 축하연회가 열렸습니다.
특히 북한 관영언론들은 기념일마다 두 나라의 우의를 강조하는 논평과 기록영화들을 방영하며 북-중 친선관계를 과시했습니다.
[녹취:조선중앙TV] “조-중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혈연적 유대는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동의 투쟁 속에서 더욱 두터워지고 공고해 지고…”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대표단이 양국에 파견됐다는 소식 뿐아니라 대사관 연회 소식조차 양국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약 관련 기념논설을 게재했지만 올해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가 달라진 북-중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합니다.
중국 베이징대학교의 주펑 교수는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시진핑 주석 취임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이 두드러지게 달라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주펑 교수] “After Xi took office, I see very remarkable change of Xi’s policy of DPRK…”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체제를 싫어하고 있으며,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자신의 이런 대북 인식 변화를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겁니다.
주펑 교수는 지난해 5월 북한의 최룡해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특사 자격으로 베이징을 방문한 이후 쌍방 간 고위급 관리들의 교류가 없다는 것은 이런 변화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나쁜 행동에 더 이상 보상은 없다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이 국익과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해 대북 강압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책의 방향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 중앙정보국 CIA의 중국담당 고위 분석가 출신인 크리스 존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진핑 정부가 북-중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존슨 선임연구원] “I do think it is changed……
중국은 북한과 과거와 같은 ‘순망치한’의 관계가 아닌 정상적 국가 관계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이상 북한 지도자의 유치한 행동을 두둔하지 않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존슨 연구원은 시진핑 주석이 목표 관철을 위해 주변국과의 마찰이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정권이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당분간 북-중 고위급 관리 교류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존슨 연구원은 그러나 중국의 근본적인 대북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국익 중시 차원에서 북한의 생명줄 역할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가 올해 북-중 우호조약 기념일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이런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최근 시진핑 주석이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란 겁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 정부의 반응을 너무 과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북한과 중국이 이전에도 우호조약 체결일을 국가급 행사로 성대하게 치러온 게 아닌 만큼 큰 변화로 보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양국의 군사적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북-중 우호조약과 북-중 군부 간 유대가 여전히 유효하다며, 일부 현상을 북-중 관계의 주목할 변화로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한국석좌 (Korea Chair)인 캐서린 문 미 웨슬리대 교수는 ‘VOA’에,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결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캐서린 문 교수] “The Chinese in my view are not going to give up their commitment to North Korea both…”
중국은 무엇보다 국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북한과 체결한 양자 협약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문 교수는 그러나 한국은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갈수록 증명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며, 앞으로 중국에 이를 증명하는 게 김정은 정권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