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구들의 활동에 대한 북한 정부의 제약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양에 주재하는 유엔 기구 직원들과의 면담을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 내용을 조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내 유엔 기구들의 활동이 북한 정부에 의해 크게 제약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북한 정부가 국제 원조를 통제할 상당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지적은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의 의뢰를 받은 외부 전문가가 지난해 7월14일에서 25일까지 북한을 방문한 뒤 작성한 감사보고서에서 제기됐습니다.
이 전문가는 방북 당시 북한에서 활동하는 유엔 직원들과 국제 비정부기구 직원들, 북한 당국자들을 만나 면담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은 북한에서 정부를 통해서만 지원 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민간단체를 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비록 북한 정부에 직접 자금을 넘겨주지는 않지만, 유엔 기구들이 북한에서 주로 하는 일은 정부 창고에 물품을 채우고 감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이어 유엔 기구들이 현지에서 채용하는 북한인 직원들은 북한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부처 관료들이라며, 이들은 유엔 활동에 실질적이고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와 협력하는 창구 역할만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유엔 기구들이 북한에서 ‘접근이 없으면 지원도 없다’는 비공식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유엔의 외국인 직원들이 평양 이외의 지역에서 움직이는 것은 엄격히 통제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습니다.
특히 자강도와 양강도는 외국인 직원들이 출입할 수 없으며, 이는 군사나 교도 시설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밖의 지역은 일반적으로 유엔 직원들이 일주일 전 사전통고를 한 뒤 현장을 방문할 수 있으며, 대규모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일부 기구들의 경우 이보다 짧게 사전통고를 하고 있습니다. 가령 세계기금의 경우 사흘 전에 통고를 해야 하고, 세계식량계획은 즉각 현장을 방문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보고서는 그러나 현장에 가서도 철저한 검증을 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인 유엔 직원들과 현지 북한 관료들이 수혜자들과의 만남을 통역하고, 통제하고, 감시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통역이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모범답안에 맞추기 위해 답변의 분위기나 말투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현장 방문이 종종 조작되거나 연극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유엔 기구들은 알고 있다며, 병원에서 가장 아픈 아이는 보여주지 않고 회복되고 있는 아이만 보여주고, 관련 약품이 진열돼 있는 것을 사례로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또 유엔 기구들은 북한 당국과 협상할 때 선을 넘으면 강제로 활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어 분배 감시와 평가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덧붙였습니다.
보고서는 이런 제약들로 인해 유엔 기구들은 투명성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없고, 원조국들의 신뢰도 훼손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원조국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유엔 기구들과 북한 정부가 지원 활동을 평가하는 종합적인 계획에 합의하고, 유엔 기구들의 사전통지 기간을 최대한 줄이며, 수혜자들에 대한 불시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안했습니다.
한편 보고서는 북한 당국에 의한 제약 외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유엔의 현지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2014년 4월부터 북한으로 현금 송출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혔다는 것입니다.
이후 유엔 기구들은 결제를 북한 밖에서 하도록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완전한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북한인 직원들에 대한 임금 지급과 북한 현지에서 발생하는 임대료, 연료 비용을 정산하기 위해서는 외화를 북한으로 들여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유엔 기구들이 이런 제약을 받으면서도 과연 북한에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