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관측을 낳았던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가 다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체제 선전을 총지휘했던 원로의 재등장에 대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공포정치'의 부작용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는 2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신축 현장을 시찰한 소식을 전하면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수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새로 건설한 신천박물관을 현지 지도하시었습니다. 황병서 동지, 김기남 동지, 리재일 동지, 김여정 동지…”
김기남 비서는 1960년대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책임주필, 1990년대 선전선동부장과 선전담당 비서로 활동하면서 북한 체제 선전과 우상화의 지휘관 노릇을 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의 후계체제 구축 과정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22주년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끝으로 3개월 반 동안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더욱이 지난 4월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3차회의에선 핵심 당 비서임에도 주석단 맨 앞줄이 아닌 방청석 세 번째 줄에 자리한 모습이 포착돼 좌천설이나 은퇴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김 비서의 역할을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떠맡은 것으로 전해졌고 특히 김 제1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을 중심으로 당 선전선동부가 재편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김 비서가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에 다시 참여함에 따라 당 비서 직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관영매체의 호명순서도 황병서 총정치국장 다음이어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86살 고령의 김 비서가 과거와 같은 실질적인 역할을 하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몇 달 동안이나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데 대해서도 업무상 실수로 일시적 처벌을 받았거나 고령에 따른 건강 상의 문제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김 비서의 일선 복귀라기 보다는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부작용을 희석시키기 위한 원로에 대한 연출된 예우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정은이 숙청을 계속하면서 노장층이 상당히 흔들렸을 거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이른바 원로세대를 적당하게 우대하는 그런 메시지도 보내면서 점진적으로 세대교체를 하려고 하는 의도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수석 박사는 얼마 전 북한의 지방의회 대의원 선거 때 김 제1위원장의 종조부인 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투표하는 모습을 북한 매체들이 이례적으로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국책연구기관의 한 북한 전문가는 김여정이 선전일꾼으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며, 김 비서의 역할은 김여정의 활동을 지원하고 자신의 선전 노하우를 전수하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