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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산가족, 남북 외교관 초청해 북한서 반출한 누나 유골 안장


지난 2011년 평양 고려호텔에서 만난 박문재 박사(오른쪽)와 누나 박경재 씨.
지난 2011년 평양 고려호텔에서 만난 박문재 박사(오른쪽)와 누나 박경재 씨.

미국의 한인 이산가족이 지난해 북한에서 가져온 누나의 유골을 가족 묘지에 안장합니다. 특히 이 행사에 미국에 주재하는 남북한 외교관을 초청해, 양측의 이례적 만남이 성사될지 주목됩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은 아들은 64년 만에 어머니 소원을 풀어드리게 됐습니다. 1951년 서울에서 인민군에 이끌려 북한으로 넘어간 누나의 흔적을 마침내 어머니 곁에 누일 수 있게 된 겁니다.

미국 중북부 미시간주에 거주하는 심장내과 전문의 박문재 씨는 1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북한에서 가져온 누나의 유골을 다음 달 31일 일리노이주 다리엔 시에 있는 가족 묘에 안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결국 누님하고 어머님하고는 나란히, 그리고 영구히, 살아있을 때 그리움을 사후에 엔조이하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박 씨의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한 채 10년 전 9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딸의 이름을 불렀던 어머니와 누나의 재회를 성사시켜야 하는 책임은 고스란히 박 씨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10일 평양 만수대 인근 공동묘지에 묻혀있던 누나 박경재 씨의 유골 일부를 북한에서 미국으로 직접 옮겨왔습니다. 쉽지 않은 요청이었지만 북한 당국은 뜻밖에도 정성스레 준비한 유골함을 들고 방북한 박문재 씨에게 유골 반출을 이례적으로 허가했습니다.

북한에 살고 있는 누나의 가족으로부터 양해를 얻어 절반 가량의 유골만 얻은 박 씨는 지난 1년여 동안 유골함을 자신의 집에 보관해 왔습니다.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담을 묘지 동판을 제작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무엇보다 어렵게 재회한 누나를 곧바로 떠나 보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협주단 가수로 차출됐던 박문재 씨의 누나 박경재 씨는 이후 폴란드와 체코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북한 피바다가극단 전속 소프라노로 활동하다 지난 1995년 44년 만에 평양에서 동생과 재회했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평양 비행장에서 내리는데 저쪽에서 한 여성이 뛰어오는데 보니까 누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끼어 안고 그냥 엉엉 울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상봉의 기쁨은 그러나 누나 박경재 씨가 3년 전 80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17년 만에 끝났습니다.

어머니가 안장된 미국의 가족묘에 누나를 함께 묻고 싶었던 박 씨의 소망은 10년 넘게 의료 봉사를 하며 인연을 맺은 북한 당국자들과의 오랜 논의 끝에 이뤄졌습니다.

박 씨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에 흩어져 살다 유골로 만난 슬픈 가족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미국에 주재하는 남북한 외교관을 안장식이 진행될 다리엔 시 ‘클라렌돈 힐스 묘지’로 초청했습니다.

[녹취: 박문재 씨] “남쪽과 북쪽의 외교관 대표들을 제가 초청했습니다. 그 분들이 오셔가지고 영결식에서 남북의 대표가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하면 이것이 참 좋은 의의 있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6대째 의사로서의 가업을 잇고 있는 박문재 씨는 이미 4년 전 제주도에 흩어져 있는 선조들의 묘를 이 곳 ‘클라렌돈 힐스 묘지’로 이장했습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남은 누나를 어머니 품에 안기기 위해 동생은 서울에서 미국, 다시 평양까지 멀리 돌았습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다시 만날 때까지 꼬박 64년이 걸렸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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