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러시아 고려인 화가 변월룡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열었습니다.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북한에서 마주한 모습과, 북한 미술에 미친 영향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 현장음]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던 한인의 후손으로 태어나 주로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활동한 일명 ‘카레이스키’ 화가, 변월룡. 그를 기리는 전시회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습니다.
[녹취: 현장음]
이번 전시회는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변화백의 작품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인데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연중 기획전으로 마련한 ‘백년의 신화-한국 근대미술 거장전’ 의 첫 번째 전시입니다. 변월룡 화백은 한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러시아의 최고 미술교육기관인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조각‧건축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이 대학 교수로 일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1953년 소련과 북한 간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북한에 들어가 평양미술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는데요, 다음해인 1954년, 잠시 러시아에 돌아갔다가 북한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다시는 고국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박혜성 학예사입니다.
[녹취: 박혜성, 학예사] “53년에는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서 북한을 방문하게 됩니다. 53년이면 북한도 한국전쟁 때문에 다 폐허가 됐잖아요. 그래서 평양미술대학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평양에 있지 않고, 평안북도로 이전을 해서 폐허가 된 가운데 전후 복구 작업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발령을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가셔서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시고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남기시고 오셨어요. 그리고 이후로 다시 돌아오시는데, 53년‧54년, 이 분이 북한에 계실 때만 해도 북한이 소련을 모범으로 삼아서 다시 새로운 국가로 태어나고자 하는 그런 무렵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그 두 나라간의 관계가 우호적이었습니다만, 53년에 스탈린이 사망을 하고 등극한 흐루시초프라는 사람은 스탈린의 그러한 독재라든지 개인 우성화라든지 그런 공포정치를 굉장히 비판을 했고, 공산국가로서 신생이었던 북한과 중국은 이제 모택동이라든지 김일성의 개인우상화가 시작되는 마당에 후르시초프가 지금 그걸 비판하고 있으니 점점 관계는 소원해질 수 밖에 없고, 북한은 소련을 점점 멀리하게 되죠. 그래서 변월룡 선생님도 다시는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세요.”
이번 전시에는 200여 점의 작품이 걸렸는데요. ‘레닌그라드 파노라마’, ‘영혼을 담은 초상’, ‘평양기행’ 디아스포라의 풍경‘ 이렇게 4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인 ’레닌그라드 파노라마‘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읽을 수 있는데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가들에게 당성, 대중성, 이념성이라는 획일적인 목표를 제시하면서 지도자와 노동자, 조국의 발전, 혁명적 투쟁과 승리를 찬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녹취: 박혜성, 학예사] “노동자를 영웅시한, 당시에는 노동자는 정말 군인만큼이나,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영웅으로 대우를 받았고, 이런 그림들이 수시로 러시아의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가 됐어요. 어부예요. 연해주에 있는 고려인 여인이, 그런데 이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요구한 코드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변월룡 선생님 자체가 연해주에, 그리고 고려인에 관심이 많고, 인간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이 어부에 대해서 굉장한 애정을 가지고 그리신 걸 볼 수가 있어요.”
두 번째 부분인 ‘영혼을 담은 초상’에는 주로 초상화 작품들이 나와 있습니다.
[녹취: 박혜성, 학예사] “물리학자고요, 그러니까 60년대 이후에는 소련이 미국하고 여러 가지 과학적인 면에서, 누가 인공위성을 쏘느냐, 그런 걸 대결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과학자들도 많이 등장한다는 점도, 그냥 자기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시대 상황을 보여준다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전시장 3층으로 올라가면, ‘평양기행’과 ‘디아스포라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평양기행’ 부분에서는 1953년~1954년, 전쟁 후 북한의 풍경과 생활상, 그리도 당시 북한의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를 볼 수 있습니다.
[녹취: 박혜성, 학예사] “북한의 평범한 얼굴들을 그렸어요. 그런데 한 인물로 볼 수 있는 게, 한복이 똑같아요. 그런데 오른쪽 작품은 되게 아카데미즘적인 되게 정교하게 그린 작품이라면, 왼쪽 작품은 햇빛이 반짝반짝 거리고, 수줍게 웃고 있는 저 북한 소녀의 생동감이 더 몇 번 안 되는 붓터치로 표현이 됐어요.”
마지막 부분인 디아스포라의 풍경에서는 그의 고향 인근의 변방 풍경들을 볼 수 있는데요, 나훗카, 블라디보스토크, 사할린 등지의 풍경입니다.
[녹취: 박혜성, 학예사] “레닌그라드의 풍경이에요. 이 분 화실에서 본, 레닌그라드라는 도시가 18세기 초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예요. 표트르 대제에 의해서.”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변월룡이라는 화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경우가 많은데요, 그의 삶과 예술작품을 통해 식민, 분단, 전쟁, 이념 대립 같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공산주의 혁명이나 제 2차 세계대전 같은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두루 살펴봅니다.
[녹취: 관람객] “포스터처럼 그렸는데, 이 분이 러시아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북한 미술의 매개 역할을 했다는 걸 이해하죠.”
“옛날 몇 십 년 전의 사람들이니까, 그 때 사람들이 뭘 입었고 뭘 어떤 행동을 했고, 노동자들 그런 거 보면 옛날 과거를 많이 알게 됐어요.”
그의 그림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 뿐아니라 작가의 개성과 미묘한 내면세계에 주목한 관람객들도 있습니다.
[녹취: 관람객] “터치들이 좀 시원시원하고 그래서 아주 느낌이 좋았어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그러나? 그런 영향을 좀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 한국사람들을 그렸을 때 정서는 아주 잘 표현해서, 한국 화가가 틀림없는 것 같아요.”
분단 후 반쪽이 되어버린 한국 현대미술사에 귀한 다리가 되어줄 이번 변월룡 회고전은 오는 5월 8일까지 열리고, 변월룡 전이 끝나면 이중섭과 유영국 전이 차례로 열립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박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