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헌법과 노동당 규약에서 삭제했던 ‘공산주의’라는 말을 또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달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 위원장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시장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지난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명시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삭제했습니다.
또 이듬해인 2010년엔 당 대표자회를 거쳐 당 규약상의 최종 목적에서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말을 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들어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부각시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6일 정론에서 ‘공산주의자로서의 노동당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같은 달 19일과 21일, 그리고 이달 들어서도 3일과 5일, 그리고 7일자에 잇달아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3일자의 경우 ‘공산주의 사상을 생명처럼 간직하리’ 등 몇몇 기사에서 공산주의 사상의 실천을 다짐하는 각 분야 주민들의 각오를 전했고, 7일자에선 1면 사설을 통해 평양 ‘려명거리’의 연내 완공을 독려하며 ‘공산주의의 이상적인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다음달 초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도력을 강조하고 민심을 결속하는 수단으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다시 등장시켰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공산주의라는 말이 헌법과 당 규약에서 빠진 것은 공산주의를 단기간의 목표로 삼기 어려운 당시 어려운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공산주의 자체를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교수는 북한이 또 다시 공산주의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데 대해선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김 제1위원장과 당의 지도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교수 / 동국대 북한학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공산주의적 시혜를 강조하면서 생산력을 빨리 발전시키고 전반적으로 70일 전투 또는 자강력 제일주의 등을 얘기하는 거죠.”
중앙정부의 배급체계가 붕괴되면서 북한사회에서 퍼지고 있는 시장화에 대한 견제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는 북한이 최근 들어 확대되고있는 시장경제를 이번 당 대회를 통해서 이른바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자기 체제 안에 포섭하기 위해 제도 정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처럼 시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하는 과정이 북한의 기존 체제를 부정하고 자본주의의 길로 가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심어주는 작업이 필요해진 게 아니냐는 설명입니다.
[녹취: 이우영 교수 / 북한대학원대학교] “시장을 뭔가 자기 시스템 하에서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포장을 뭘로 하든지 간에 어쨌든 시장을 인정하는 거죠. 그랬을 때 논리 개발이 필요한데 시장을 정당화하면 반공산주의냐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성에서 공산주의를 다시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동국대 고유환 교수도 북한이 자강력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것으로 미뤄 이번 당 대회에서 개혁개방을 전면화하는 조치를 내놓긴 어렵겠지만 시장화 현상을 북한 정권의 통치력을 강화하고 사회주의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절 마지막 당 대회였던 지난 1980년 6차 대회에서 당의 최종 목적이 ‘공산주의 사회건설’에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