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서 터를 잡고 글을 쓴 문인들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회에서는 `분단문학'의 두 거목인 최인훈, 이호철 작가의 대표작품 초간본이 공개됐는데요, 서울에서 박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녹취: 현장음]
서울 은평구에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는 오는 6월19일까지 ‘한국문학 속의 은평 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작가들이 터를 잡고 글을 썼던 은평구의 장소성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방 전후 은평구에 거주하던 문인 130여 명의 작품 초간본을 한국 최초로 공개하고 있는데요,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정지용은 은평구 녹번동에 살고 있었고, 분단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평가 받는 이호철, 최인훈 작가, 그리고 1969년에 조성된 기자촌에 머물던 언론인 출신 작가들의 원고와 책들을 함께 공개합니다. 전시를 준비한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입니다.
[녹취: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 “87년도의 <<문학수첩>>기준으로, 은평에 문인들이 100 명 넘게 계셨고, 실제로 저희들이, 등록 안 된 사람들까지 찾아보니까 130여 명이 계셨습니다. ‘문학인의 벽’이라고 해서, 여기에 작가 분들을 전시를 다 했습니다.”
전후 분단문학의 거목인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 초간본과 작가 이호철의 ‘남과 북’도 함께 전시됐습니다.
[녹취: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 ” 최인훈 선생의 <광장>이 <<새벽>>지에 연재가 되다가, 60년에 책이 만들어지면서, 61년에 책이 초판이 나옵니다. <광장>에 대해서는 다 소개를 했고요, 그 다음에, 우리는 최인훈을 알면, 전부 <광장> 으로만 다 고정이 돼 있는데, ‘광장의 이명준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한 이유는, 지금의 상황과, 광장에 등장하는 이명준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영원히 이렇게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남과 북, 이념의 문제는 끊임없이, 60 년, 지금 55 년이 지난 다음에도 끊임없이 그 원점에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사실 저 이명준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슴에 있는 분단이나 이념이나 통일이나, 이런 문제일 것 같습니다. 여기가 이호철 선생님인데요, 인민군으로 징발돼서 탈출해서 남한으로 정착을 하셨고, 이산가족 상봉에서 누이도 만났습니다. 누이 동생.”
이호철 작가는 반평생 이상을 북한산 백운대가 보이는 은평에서 살면서, 분단을 소재로 한 소설 대부분을 썼습니다. 이호철 작가입니다.
[녹취: 이호철, 작가] “<닳아지는 살들>, 내 대표작의 하나, 그게 적선동 살 때 쓴 거고, 그 뒤에 40 넘어서는 불광동에 살면서 주로 많이 썼죠. 그러니까 작가라는 거는 자기 산 만큼 써요. 그러니까 사실로든 혹은 우회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카프카니 프로스트니, 전부 직접은 아니더라도 그 체험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나는 이북에서 혼자 올라왔잖아요. 가족 다 버리고. 그러니까 이북 그리워하고, 가족들 그리워하고. 지금까지도 그리워해요.”
[녹취: 현장음]
특히 은평구 불광동은 15개 언어로 번역한 <남녘사람 북녘사람>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1974년 남북회담이 열렸을 때, 불광동에 사는 실향민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녹취: 이호철, 작가] “지금 요즘 쓰는 거는 <남녘사람 북녘사람>. 이제 귀향에 가까우니까 귀향으로 가까워지는 소설이 요즘 소설이죠. 그러니까, 나는 내 작품은 탈향에서 귀향, 분단에서 통일이죠.”
이호철 작가는 함경 원산에서 태어난 실향민으로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집됐다가 국군포로로 풀려나 혼자 월남해 1955년에 <탈향>으로 등단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이 가져온 비극과 이산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글을 써왔고, 은평구 불광동에 살던 소설가 최인훈과 함께 분단 소설을 한국문학의 주류로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녹취: 이호철, 작가] “아직까지도 난 쓸 거리가 있어요. 남북 간의 문제가 있는 한, 난 쓸 거리가 끝내 없어지지 않아. 작년에도 <남과 북, 진짜 진짜 역사 읽기>라는 걸 썼잖아요. 100살까지 나는 쓸 거예요.”
[녹취: 현장음]
은평구에 터를 잡았던 문학인들의 작품들과 작가의 약력을 한 데 모은 첫 전시인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녹취: 김지연, 작가] “저희 작품도 여기에 다 있고 하지만, 문학의 요람입니다. 우리 은평구가. 오늘 여기에 오니까 새삼 우리 문인들이, 요즘 소설책 잘 안 팔리고 문학이 마치 추락시대인 그런 느낌인데, 오늘 여기에 오니까 다시 문예부흥시대가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녹취: 이길융, 작가] “나도 소설 쓰는 사람으로, 이런 게 잘 정리돼 나오니까, 와서 문학을 공부하는 것 같고, 옛날에 봤던 것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고 참 좋습니다.”
[녹취: 지연희, 작가] “옛날 책을 보면, 지나간 것이 다 들어있잖아요. 그래서 그 시간 속에 담긴 우리의 역사, 문학인으로서의 역사가 그냥 눈에 선하게 보여서 너무 좋아요.”
[녹취: 현장음]
전시 기간 동안 시민들이 작가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는데요, 오는 23일에는 이호철 작가가, 다음달 7일에는 김훈 작가가 시민들을 만나 자신의 삶과 문학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박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