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공식 지정한 것은 북한의 자금줄을 전방위로 차단하기 위한 목적인데요. 새 지침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인지, 또 기대되는 대북 제재 효과와 한계는 뭔지, 백성원 기자와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진행자) 재무부의 이번 조치, 북한이 국제금융망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바짝 죄는 차원이라고 하는데, 그게 정책을 세운다고 가능한 일입니까?
기자) 이번 조치는 북한의 계좌를 강제로 동결하거나 거래를 막는 방식이 아닙니다. 대신 이런 은행이 금융계에서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하는 요주의 기관이다, 그런 신호를 보내면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 거의 모든 거래가 달러로 이뤄지는 판국에, 북한 돈을 만지는 은행들은 미국 금융체계에 접근할 수 없게 되니 얼마나 피해가 막심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미국이 강제로 법집행에 나서지 않아도 은행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북한과의 거래를 끊는 결과로 이어지는 겁니다.
진행자) 이론은 그렇습니다만, 계획대로 될까요?
기자) 단순히 이론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꼭 11년 전에 미국 정부가 규모는 작지만 똑 같은 정책을 적용했고, 그게 북한을 아주 아프게 만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BDA) 은행에 대해 취했던 거래 금지 조치 입니다. 당시 미 재무부가 이렇게 새로운 방식의 제재를 들고 나왔을 때 백악관, 국무부 고위 관리들조차 반신반의 했죠. 국가에 대한 직접적 제재 없이 북한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 그런 회의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의 금융 규제망에 걸려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은행들이 너도나도 북한 계좌를 폐쇄하고 거래를 중단하면서 북한을 아주 어려운 상황으로 빠뜨렸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이번 조치를 ‘BDA 제재’ 방식의 확대판으로 이해하면 되는 거군요.
기자)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엔 ‘BDA’라는 은행을 겨냥했지만 이번엔 북한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거니까요.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건 결국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은행들은 미국 금융체계에 얼씬도 하지 마라, 그런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를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까지 겨냥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나오는 거구요. 해당 은행들로선 북한의 불법 금융 활동을 들춰냄으로써 합법적 자격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금융계의 불한당으로 낙인 찍혀서 미국 금융계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인데, 선택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진행자) 대부분 중국 금융기관들이 영향을 받는 거 아닐까요?
기자) 베이징과 평양 간 금융거래의 통로로 이용되는 중국 은행들이 우선적으로 타격을 입을 겁니다. 그밖에 북한이 미사일이나 핵연료, 또 관련시설 대금을 지불할 때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의 비밀계좌들 역시 문제가 될 거구요.
진행자) 당장 다음 주에 미국과 중국이 베이징에서 전략경제대화를 갖게 되는데,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기자) 예.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베이징에서 중국 고위 관리들과 머리를 맞대게 되는데요. 전반적인 북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미 재무부의 이번 조치 역시 중요하게 다룰 것이고,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시점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난 당일이라는 점, 역시 양국 간 그런 긴장을 예견하는 듯한 대목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이 1일 워싱턴주재 중국대사관의 반응을 전하고 있는데요. 주하이촨 대변인은 “일방적 제재가 중국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해선 안 된다,” 벌써부터 이런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진행자) 자, 이런 압박을 통해서 과연 북한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 것인가, 그걸 예견하긴 좀 이르죠?
기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2005년 ‘BDA 제재’를 경험한 북한이 거기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 건데요. 이후엔 자금을 전세계 여러 곳에 분산 예치해 놨을 것이라거나, 고도의 위장 거래 방식을 개발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재무부의 이번 조치와 비슷한 제재가 과거 이란에겐 효과적으로 적용됐습니다. 하지만 이란은 석유나 다른 에너지 수출을 통해 매달 수 십억 달러를 벌어들였기 때문에 옥죌 수 있는 대상이 분명했다는 점이 북한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북한은 그런 명확한 거래와 돈의 흐름이 잘 안 보이니까요. 따라서 이번에도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 의지에 얼마나 호응할지가 관건이 될 겁니다. 중국 역시 2005년 ‘BDA 제재’ 때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북한을 고립시키는 선택을 했었는데요. 북한의 갑작스런 변란을 두려워하는 중국이 이번엔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 또 북한이 이번 조처에 반발해 추가 도발을 감행하지 않을지, 미 재무부의 이번 조치 이후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진행자) 예, 미국 재무부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한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재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백성원 기자와 얘기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