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위 관리들의 최근 북한 관련 발언에 다소 엇갈리는 메시지가 담겨있어 명확한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적극적 대화 의지에 이어 초강경 대응을 예고하는 듯한 신호가 나와 정책 전환의 전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매주 수요일 깊이 있는 보도로 한반도 관련 주요 현안들을 살펴 보는 `심층취재,' 백성원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애나 리치-앨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아무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애나 리치-앨런 대변인] “Our policy towards the DPRK has not changed. We continue to call on the DPRK to refrain from provocative actions and inflammatory rhetoric that threaten international peace and stability, and to make the strategic choice to fulfill its international obligations and commitments and return to serious talks.”
북한이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도발적 행동과 선동적 수사를 중단하고, 국제 의무와 약속을 지켜 진지한 대화로 복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을 촉구한다는 기존 입장 그대롭니다.
국무부가 변함없는 대북 기조를 강조한 건 북한에 대한 엇갈린 신호로 비쳐질 수 있는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잇단 발언이 낳은 파장 때문입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 18일 북한이 즉각 취해야 할 조치로 언급한 핵 “동결”은 대화 재개 조건의 완화를 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습니다.
[녹취: 존 케리 국무장관] “And the immediate need is for them to freeze where they are-to agree to freeze and not engage in any more provocative actions, not engage in more testing particularly, in order to bring countries together and to begin a serious negotiation about the future.”
반면 “김정은이 핵 공격을 감행할 향상된 역량을 갖더라도 바로 죽을 것”이라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발언은 미 조야의 `선제공격론'과 맞물려 초강경 대북기류로 읽혔습니다.
[녹취: 대니얼 러셀 차관보] “Perhaps he’s got an enhanced capacity to conduct a nuclear attack and then immediately die.”
미국이 대화에 열려있다는 방침을 넘어 비핵화 대화의 기준을 낮춘 것인지, 아니면 외교의 한계를 절감하고 최후의 수단을 고려하는 단계까지 온 건지, 명확한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진 겁니다.
미국의 전직 고위 관리들은 최근 미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대북 발언들을 정책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을 경계했습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는 13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은 늘 북한의 비핵화를 단계적 과정으로 보고 동결을 그 첫 조치로 인식해왔다며, 케리 장관의 “동결” 발언을 변화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아인혼 전 특보] “It would be an interim measure on the path to a nuclear weapons free Korean peninsula in which North Korea would have abandon its nuclear program.”
실제로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미 지난 4월 북한이 모든 핵 활동을 동결하고, 과거의 핵 활동을 명확히 신고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해야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다면서 “동결” 조건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VOA’에 북한 문제를 현 상태 그대로 다음 정부에 넘기는 것은 끔찍한 일인 만큼 오바마 행정부가 최소한 추가 실험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대화에 응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문제는 북한이 그런 조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치적 합의와 기술적 확인이 어렵다는 점을 “동결” 협상의 어려움으로 거론했습니다.
마이클 오핸론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재로선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동결시키는 것이 이치에 맞고 가장 달성가능한 목표라면서도, 북한이 “공짜로”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대북 제재의 일부 완화나 인도주의 지원 등이 대화 재개의 선제조건으로 제시될 것이라는 겁니다.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제시할 높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울 뿐아니라 동결 여부를 검증할 구체적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미국 내 지지 역시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 “Getting them to do so, I think, it’s often perceived as…”
특히 북 핵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핵 과학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적 한계를 “동결” 약속이 실제로 지켜졌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했습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입니다.
[녹취: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소장] “You have to be careful what a freeze is; the freeze is no longer stopping activities at Yongbyon. They appear to have a second centrifuge plant. They are making nuclear weapons. Those places have to be frozen.”
북한이 이미 제2의 원심분리기 시설을 가동 중인 것으로 보여 이제는 단순히 영변 핵 시설 중단을 동결로 간주할 수 없다는 우려입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미국 정부의 비핵화 목표에 변화가 없고 변화를 줘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결을 초기 단계 목표로 삼더라도 반드시 추가 협상 약속을 포함시키고 특히 이후의 비핵화 절차를 보다 잘 규정해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국무부 역시 최근의 “동결” 논의와 관계 없이, 미국은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해 진정성있는 협상에 열려있고, 북한이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행동과 도발을 자제할 책임이 있다는 오랜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애나 리치-앨런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입니다.
[녹취: 애나 리치-앨런 대변인] “We remain open to authentic and credible negotiations to implement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and bring North Korea into compliance with all applicable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The onus is on North Korea to take meaningful actions toward verifiable denuclearization and refrain from destabilizing acts.”
전문가들은 또 미국 정부의 비핵화 대화 기조에 변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경론에 선제 행동 가능성을 추가한 건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오핸론 연구원은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한다면 미국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그에게 보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특히 러셀 차관보의 “김정은 죽음” 관련 발언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죽일 것이라는 의도를 드러낸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보다는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든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도할 역량과 의지가 있는 만큼 북한의 현재 행보는 북한에 해가 될 뿐이라는 뜻으로 읽힌다는 설명입니다.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연구원 역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을 테니 핵 정책을 변경하라는 게 러셀 차관보의 메시지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업무 핵심 당국자로부터 북한 최고 지도자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면에는 대북 압박을 위한 미국 정부의 고도의 계산이 깔렸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 “It is inescapably a means of signaling through communication in sort of language that a KCNA audience might understand or might be expected to understand…”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 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조선중앙통신 청취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북한에 일종의 신호를 보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우며, 러셀 차관보가 해당 발언에 앞서 사전 검토를 거쳤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담당 보좌관을 지낸 수미 테리 바우어그룹 이사는 더 나아가 미국은 대통령 행정명령 12333호에 따라 외국 지도자에 대한 정치적 암살을 금지해왔지만 국가안보에 명백한 위협이 존재하거나 전시에는 이런 원칙이 모두 백지화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는 러셀 차관보의 발언이 나온 직후 ‘VOA’에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할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 보호를 위한 강한 의지로 이해해 달라는 겁니다.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입니다.
[녹취: 캐티나 애덤스 대변인] “The United States is fully committed to the security of our allies in the region, and we will take all necessary steps to defend ourselves and our allies and respond to North Korean provocations.”
미국 행정부 내부 기류에 밝은 전직 관리는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북한의 거듭된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좌절감이 고위 외교 당국자들의 엇갈리는 대북 발언으로 표출된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 입니다.
[녹취: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 “I do sense that there is…”
켈리 전 차관보는 특히 최근 미국 외교협회(CFR) 등 미 일각에서 북한과의 ‘핵 동결 협상’과 이를 위한 조건 없는 비공식 대북 접촉 등을 권고하는 데 대해, 흥미 있는 제안들이지만 모두 과거에 시도했던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켈리 전 차관보는 이어 미 행정부가 설령 또다시 그런 방안을 추진한다 해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