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하자 북한이 사흘 간의 애도기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두 나라는 형제국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25일 카스트로 전 의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인 나라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관영 매체들을 통해 카스트로의 업적을 극찬하며 이례적으로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의 애도기간까지 선포했습니다. 또 권력 실세로 불리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이 쿠바로 떠났습니다.
서로 “형제국”이라고 부르는 두 나라는 올해로 수교 56주년. 주요 국경일이나 행사 때마다 친서와 축전을 자주 교환할 정도로 아주 가깝습니다. 유엔에서 두 나라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오를 때마다 서로 감싸며 입장을 대변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지구상에서 공산체제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두 국가. 버팀목이었던 옛 소련의 붕괴 이후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는 경제상황, 언론자유 탄압, 전체주의 체제 등 외형적으로도 비슷한 게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내부 상황을 들여다 보면 두 나라는 확연히 다릅니다.
쿠바 고위 관리 출신으로 몇 년 전 미국으로 망명한 로드리게스 씨(가명)는 ‘VOA’에 쿠바는 북한처럼 권력 세습이나 우상화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로드리게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인간적 경의를 표시하고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피델이나 라울 카스트로에 대한 동상도 없어요. 쿠바에 들어 갈 때는 (북한과) 완전히 다른 사회를 보시리라 믿습니다.”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나 혁명 영웅인 체 게바라의 업적을 기리고 있지만 북한처럼 인간을 신격화하거나 우상화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로드리게스 씨(가명)는 이어 쿠바는 북한처럼 폐쇄적이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로드리게스 씨] “북한과 쿠바는 같은 사회주의 제도이지만 쿠바사회는 북한사회와 아예 관계가 없습니다. 쿠바인들이 외국인들과 아무 문제 없이 만나고 자기 의견을 다 알릴 수 있어요. 북한 사람들은 외국인들과 아예 만날 수 가 없지요”
북한 당국은 외국인과 주민들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폐쇄적 사회이지만 쿠바인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외국인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쿠바 정부는 3년 전 일부 특수계층을 제외한 전국민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할 정도로 열린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부터 출국허가제를 폐지해 쿠바인들은 여권을 발급받아 자유롭게 해외에 나갈 수 있습니다.
조국을 탈출한 국민들에 대한 처우도 매우 대조적입니다.
쿠바는 과거 북한처럼 조국을 떠난 쿠바인들을 “혁명의 배반자”, “기생충” 이라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단순히 “경제 이주민”으로 통합해 부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탈출한 쿠바인이 주재국에서 영주권을 받았거나 출국한 지 8년이 지나면 아무런 제재 없이 조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탈북민을 “추악한 배신자”, “인간 쓰레기”로 비난하며 가족까지 범죄자로 취급하는 북한과 매우 다른 겁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대역죄를 덧쌓고 있는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리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단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쿠바는 게다가 국내 경제 성장을 위해 해외 쿠바인들의 송금을 대대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미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살고 있는 180만 명의 쿠바계 이민자들이 해마다 조국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내는 송금 규모가 2014년 기준으로 20-30억 달러에 달합니다. 쿠바 주민들은 이 돈으로 장사를 하며 자립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쿠바 전문가인 미 외교관 출신의 게리 메이바덕 박사는 ‘VOA’에 이런 송금과 모국 방문이 쿠바의 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메이바덕 박사] “The remittance is very important because it makes…”
이런 영향으로 쿠바인들의 경제적 자유가 지난 20년 간 크게 강화됐고 쿠바 정부도 속도 조절을 하면서 이런 경제 활성화를 장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과 해외에 사는 탈북민들은 수 만 명에 불과한데다 북한 당국의 단속과 중개인을 통해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쿠바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최근 들어 북한과 쿠바의 가장 대조적인 모습은 ‘고립’과 ‘개방’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쿠바는 지난 2014년 미국과 수교한 뒤 하늘과 바닷길이 열리고 교류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쿠바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쿠바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10만 명으로 전년보다 17.6%가 늘었고 이 가운데 미국인이 14만 7천 명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찾는 서방관광객은 지금도 연간 수 천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도발과 핵개발에 대한 유엔의 제재 결의로 북한은 과거 어느 때보다 고립된 상황입니다.
지난해 쿠바를 방문했던 최진욱 한국 통일연구원장입니다.
[녹취: 최진욱 원장] “북한의 경우 미국과 수교 문제도 안 되고 핵 문제도 어려워지고 북한 자체가 더 고립으로 가고 있고 북한 내부 체제도 경직돼 있고 화해 협력보다 대결 국면이 지속되는 게 안타까운 게 아니겠습니까? (중략) 쿠바는 비행기가 거의 안 가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더라구요. 비행기 노선이. 북한은 사실상 북경 노선 하나 밖에 없지요. 어떻게 보면 섬은 쿠바가 아니라 북한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은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북한의 ‘왕정체제’가 존재하는 한 쿠바처럼 변화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개혁은 과거의 실책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수령이 완벽하다는 유일영도체계에 모두 배치되기 때문에 개혁이 힘들다는 겁니다.
미 펜실베니아주립대학의 레리 배커 교수는 비슷한 관점에서 쿠바가 ‘집정관적 마르크스주의’형태인 반면 북한은 ‘왕조적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고 있어 방향이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전문가들은 쿠바가 핵·미사일이 없는 반면 북한은 이를 틀어쥐고 나가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과 쿠바의 상황은 한층 더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