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4명을 억류 중인 북한이 이들의 소재를 감춘 채 영사 접견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미국인 제프리 파울 씨는 수감된 미국, 캐나다 인들과 가족들에게 꿋꿋이 견뎌달라는 위로를 전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억류 미국인들이 북한 어디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의 한 관리는 2일 ‘VOA’에 북한에서 미국의 이익보호국 역할을 하는 스웨덴대사관 측이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의 정확한 소재지를 북한 당국에 계속 문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스웨덴대사관 대표가 지난해 3월 2일 웜비어 씨를 방문한 게 마지막 영사 접견이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추가 접견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웜비어 씨는 지난해 1월2일 평양 국제공항에서 출국하려다 호텔에서 선전물을 훔쳤다는 혐의로 억류된 뒤 그 해 3월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북한은 웜비어 씨 외에도 2015년 10월 2일 김동철 씨, 올해 4월 22일 김상덕 씨, 그리고 지난달 6일 김학송 씨 등 4명의 미국 시민을 억류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북한에 억류됐다 6개월 만에 석방된 미국인 제프리 파울 씨는 지난 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억류 당시 바깥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게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제프리 파울 씨] “The biggest problem for me was not knowing what is happening back here…information black hole where I was in, not knowing anything was going on outside world.”
그러나 현재 억류돼 있는 미국인들에겐 파울 씨에게 한 차례 허용됐던 영사 접견조차 큰 “혜택”으로 비춰질 만큼 외부 접근이 완전히 차단돼 있습니다.
평양주재 스웨덴대사관의 마르티나 아버그 소모기 2등 서기관은 지난 2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억류 미국인들의 건강 상태를 파악할 길이 없고, 이에 대한 북한 당국의 설명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북한이 억류 미국인들에게 가족과 지인이 보내오는 편지와 일상용품마저 전달해주지 않아 일부 물품들이 평양의 스웨덴대사관 내부에 그대로 쌓여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울 씨는 억류 당시 1분당 5달러의 국제전화 요금을 내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가족에 전화한 적이 있었고 가끔씩 손에 쥔 가족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프리 파울 씨] “I kept those and read them and reread and reread them…they were from kids and my wife, and also my brother and sister-in-law…that was a great comfort as well.”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법과대학원 노정호 교수는 북한이 이처럼 억류 미국인들의 영사 접견을 차단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963년 체결된 ‘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체포, 구금된 외국인이 자국 영사의 면담을 요구할 경우 즉시 해당국 정부에 이를 통보하고 영사 접견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인 인질을 “살아있는 미끼”처럼 이용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니컬러스 에버스타트 연구원] “The North Korean regime has determined that they can use American hostages as live bait in their negotiations with Washington and they can do so with impunity because there seem to be zero consequences for such behavior.”
북한은 영토 내로 들어온 미국인을 억류하고 위협하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보복 당하지 않는 “안전한” 도발 수단으로 여기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가장 최근 억류된 미국 시민 2명 모두 평양과학기술대학 소속으로, 수해 복구와 식량 지원 등 대북 인도주의 활동에 전념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국무부 한국과장 재직 당시 억류 미국인 문제를 수 차례 다뤘던 데이비드 스트로브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평양과기대와 북한 지원에 헌신했던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북한 정권과 시스템의 속성이야말로 한반도 문제의 근원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국방정보국(DIA) 정보분석관을 지낸 브루스 벡톨 텍사스 앤젤로주립대 교수는 불법 월경 등 실질적 위법 행위를 문제 삼기도 했던 북한이 최근엔 훨씬 자의적인 억류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긴장 고조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루스 벡톨 교수] “And this is just another way, another tool that North Korea can use to ratchet up the tension…”
그 동안 북한에서 발생한 미국인 억류 사태는 대부분 빌 클린턴, 지미 카터 등 전직대통령, 혹은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같은 중량감 있는 인사들의 방북을 통해 해결됐습니다.
윤 선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미국 시민을 이용해 미국 정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북한과의 관여에 정치적 유명인사가 개입하도록 만드는 전략에 성공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록 전직 정치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석방 교섭에 나선다 해도 미국의 압박과 주의를 분산시키고 북한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효과는 충분하다는 설명입니다.
수미 테리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한국담당 보좌관과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따라서 북한이 이번에도 미국 고위급 인사가 방북해 “고개를 숙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앞서의 국무부 관리는 미국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편 북한에 억류됐던 제프리 파울 씨는 가족들 역시 억류 당사자들 못지 않은 고통에 시달린다며 수감 중인 미국과 캐나다 시민, 그리고 그 가족들이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녹취: 제프리 파울 씨] “Hang in there. Should get better. Our prayers are with all the families and detainees.”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