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 씨의 장례식 소식, 어제(22일) 오하이오주 현지에서 직접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함지하 기자로부터 더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함지하 기자, 어제 웜비어 씨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지, 친구 등 많은 추모객이 참석했는데요, 장례식 이후에 안장 행사도 있었지요?
기자) 네, 어제 웜비어 씨의 운구차량이 장례식이 열린 모교인 와이오밍 고등학교를 떠나는 장면까지 전해 드렸었는데요. 그 이후, 웜비어 씨 운구 차량은 경찰 등의 호위를 받으며 인근 스프링 그로브 묘지에 도착해 곧바로 안장됐습니다. 물론 이 때도 많은 친지와 친구들이 고인 곁을 지켰습니다. 안장이 끝난 뒤에는 웜비어 씨의 자택에서 또 다른 추모행사가 열렸는데요. 현지 경찰은 유족들의 뜻에 따라 취재진을 비롯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진행자) 웜비어 씨는 버지니아주립대학 학생인데, 고향은 오하이오였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웜비어 씨는 오하이오주 와이오밍이라는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버지니아로 진학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장례식을 찾은 어린시절 친구들 중에는 웜비어 씨와 꽤 오랜만에 재회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하이오 주와 버지니아 주는 비행기로 약 1시간, 차로는 약 7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진행자) 어제도 잠깐 전해 주셨지만, 주민들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기자) 애통하고 침통한 표정이었습니다. ‘VOA’와 만난 한 여성은 웜비어 씨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하자, 눈물부터 쏟았는데요. 그만큼 웜비어 씨와의 좋은 추억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웜비어 씨의 무사귀환을 위해 온 마을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웜비어 씨가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 데 아쉬움이 큰 모습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거리 곳곳 가로수와 가로등을 하얀색과 파란색 리본으로 묶는 등, 웜비어 씨와의 작별인사에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는데요, 하얀색과 파란색은 웜비어 씨의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색깔이라고 합니다.
진행자) 주민들 사이에서 북한 정권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주민들은 웜비어 씨가 매우 바르고, 곧은 성품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 정권이 웜비어 씨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내리고, 이후에도 잘 보살피지 못한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저희 ‘VOA’와 대화하면서, 웜비어 씨를 오랜 기간 억류한 것도 모자라 혼수 상태로 돌려보낸 북한 정권의 잔혹성이 조금은 두렵다는 말도 했습니다.
진행자) 이웃들이 기억하는 웜비어, 어떤 인물인가요?
기자) 호기심이 많았고, 그래서 여행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한 지인은 웜비어 씨가 영국 런던에서 몇 개월 간 지내다가 오는 등, 다른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따라서 북한에서 무례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어제 장례식에는 미 국무부 부장관이 참석했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국무부의 존 설리반 부장관이 웜비어 씨 가족들을 위로했고요, 또 웜비어 씨의 석방을 위해 직접 군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했던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참석했습니다.
진행자) 웜비어 씨가 17개월 만에 혼수 상태로 돌아온 사실만으로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 같은데, 불과 엿새 만에 사망하면서 미국사회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죠?
기자) 미국 언론들이 웜비어 씨의 장례식을 비중 있게 보도를 한 점이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트위터 등 사회연결망 서비스(SNS)에는 북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전체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이 싸늘해진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웜비어 씨의 장례식에 다녀온 함지하 기자로부터 현장 분위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