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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지역 전자비자 북한인 포함...해외노동 차단 압박 역행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자료사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자료사진)

미국이 북한 정권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북한 노동자를 받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달부터 극동 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입국하는 북한인들의 비자를 사실상 면제하는 전자비자 발급을 시작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4월 발표했던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18개 나라 국민들에 대한 전자비자 발급이 이달부터 시작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1일부터 시험가동을 시작했고 8일부터 본격적으로 전자 입국사증을 통해 간편하게 블라디보스토크에 입국할 수 있다는 겁니다.

러시아 언론들은 새 조치가 사실상 비자를 면제하는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전자비자가 발급되는 18개 나라에는 북한과 인도, 이란, 일본이 포함돼 있습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앞서 지난 4월 이 조치를 승인하며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북한인들이 블라디보스톡 관광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새 조치를 통해 북한 노동자들의 유입이 더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 지역 건설노동자 출신인 조모 씨는 4일 ‘VOA’에 전자비자 발급으로 “북한 정부의 (건설) 노동자 송출 절차가 훨씬 수월해져 노동자 규모도 더 늘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는 러시아 정부가 새 전자비자 유효기간을 30일로 못 박은 것에 대해서도, 북한 노동자들의 경우 기한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러시아에 입국한 뒤 북한 당국이 개입해 기한을 조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게 아니란 겁니다.

한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노동자 5만 명을 파견 중이며, 이를 통해 해마다 적어도 1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의 북한인 전자비자 발급 조치는 북한 정권의 돈줄을 죄기 위해 노동자 해외 파견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4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처음 발사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국제사회가 북한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북한 정권을 지원하거나 선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었습니다.

미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가 핵·미사일 개발 자금에 투입되는 것으로 보고 차단 노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알리시아 에드워즈 국무부 대변인은 올해 초 ‘VOA’에, 북한의 노동자 파견은 핵 개발에 도움을 주고 인권 유린으로 이어지는 만큼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었습니다.

[녹취: 에드워즈 대변인] “North Korea’s export of labor generates revenue for the North Korean government, and enables the development of its illicit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서명한 대북제재 강화법 역시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 상원의원들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에 서한을 보내 러시아가 월드컵 축구장 건설에 북한 노동자의 강제노동을 방조했는지를 조사해 확인되면 개최권을 박탈해야 한다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오히려 북한인들의 러시아 입국 절차를 더욱 간소화하며 역행하고 있는 겁니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아시아전략센터 소장은 지난주 미 ‘블룸버그 통신’에, 미국이 러시아에 북한 노동자 고용 중단을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가 그런 요구를 수용하면 북한은 러시아가 미국 편을 든다고 생각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옆으로 밀려나 입지만 좁아질 것이란 겁니다.

드미트리 페데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지난 4월 기자들에게 “러시아는 제재를 통한 대화를 결코 지원한 적이 없다”며 그런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추가 제재로 미-러 관계가 더 악화하는 분위기여서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를 받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노동자 파견 3대 지역인 중동은 규모가 더 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AP 통신’은 지난달 27일 미 관리들을 인용해 중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북한이 노동자를 많이 파견하는 걸프 지역 내 미 핵심 동맹국에 북한 노동자가 6천 명이나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달 안에 아랍에미리트에 북한 노동자 1천 명이 추가로 도착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중국 정부 역시 7만~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자국 내 북한 노동자들의 규모를 줄이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지난 2015년 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이 해외 노동자 파견을 통해 해마다 12억~23억 달러를 벌어들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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