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ICBM에 소형화한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이 있고, 핵무기도 최대 60개에 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추측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매주 한반도 관련 현안을 자세히 분석해 드리는 ‘심층취재’,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인류가 개발한 많은 발명품은 시간이 갈수록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강력하게 진화해 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은 길이가 25미터, 무게는 무려 30t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능이 훨씬 우수하면서도 크기는 엄지 손가락만한 초소형 스틱 컴퓨터까지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그런 기기 안에 들어가는 초소형 반도체를 수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웃도는 42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더 작고 강력하게! 핵무기도 이런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미국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처음 투하했던 핵무기 ‘리틀보이’의 무게는 4.4t, 위력은 TNT로 2만 t인 20kt(킬로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최신 핵탄두 가운데 하나인 W88은 무게가 360kg에 불과하지만, 폭발력은 TNT로 47만 5천t인 475kt(킬로톤)에 달합니다.
핵탄두는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을 감싸고 있는 폭발물의 규모를 아주 작고 가볍게 만들면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핵 전문가들은 현대화된 핵탄두가 이런 소형화와 경량화, 비행 중 겪는 충격과 진동, 잦은 온도 변화에 견디는 힘,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대기권에 다시 진입할 때 받는 엄청난 열과 압력을 견딘 뒤 목표물을 정확히 가격해야 진정한 핵미사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장(ISIS)은 이런 요소 때문에 핵탄두 소형화가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고 지적합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Miniaturizing a warhead for a missile can be very difficult……”
특히 사거리가 5천500km 이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먼 거리를 매우 높이 비행하기 때문에 고도의 안정성과 정확성이 필요해 기존 핵 보유국들이 신뢰성 확보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거리가 1천 200km 안팎으로 짧은 노동미사일에 다소 무거운 핵탄두를 장착해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고 보면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적어도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 국방정보국(DIA)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미사일에 장착할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보도가 나오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게다가 국방정보국뿐 아니라 다른 정보기관들도 이런 판단에 동의하고 있다는 ‘NBC’ 방송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미국이 당장 북한의 ICBM 위협에 직면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폭증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정보 당국의 이같은 판단에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신안보센터(CNAS)의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태평양 안보소장은 정보 당국이 “추정”이란 표현을 계속 사용한 것을 보면 이번 판단은 확실한 정보와 증거에 근거한 게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크로닌 소장] “What are the hard facts? What is your evidence? The words…”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예상보다 훨씬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 당국이 다가올 파장을 완화하기 위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북한의 능력을 약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미사일 전문가인 마이클 엘리먼 선임연구원은 정보 당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한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능력과 정확성을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엘리먼 선임연구원] “It’s much higher and so the protection mechanisms for the re-entry vehicle are more rigorous..”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과 정확성에 관한 신뢰도는 북한이 실시한 두 번의 시험만으로는 확증이 어렵다는 겁니다.
엘리먼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발사 단계만 성공했을 뿐 비행 중 정밀유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재진입 능력을 입증했는지 모두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핵 전문가로 북한을 7번 직접 방문했던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도 핵과학자회보(BAS)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관련 핵심 기술을 확보하려면 1~2년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산업물질이 아니라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강력한 폭발물 등을 혼합한 탄두를 아주 작고 가볍게 만들면서 엄청난 고열과 압박을 견뎌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거나 표적 위에서 폭발하려면 훨씬 긴 시간과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고도의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발사 단계에서 사고로 탄두가 폭발하거나 대기권에 다시 진입할 때 타버린다고 지적합니다. 게다가 미사일 방어망까지 뚫을 수 있는 최신 전자 장비를 갖춘 ICBM을 개발하려면 적어도 5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미 미사일방어국 당국자들도 이런 배경 때문에 적어도 2020년까지는 북한의 어떤 ICBM 공격도 방어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최대 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 국방정보국의 판단에 대해서도 신뢰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 대행을 지낸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미국사무소장은 북한이 핵무기 60개를 보유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민간 전문가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피츠패트릭 소장] “I don’t know any non-governmental analysist who think North Korea could have sixty….”
북한이 비밀리에 여러 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대량으로 생산해 핵무기를 만들었다면 그런 규모를 추정할 수 있지만, 60개는 너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과학국제안보연구소의 올브라이트 소장도 “최악의 상황에 대한 평가”라며 생산한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도 모두 무기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올브라이트 소장] “you can’t put it all on weapons, there’s going to be some loss..”
제조 과정에서 일부를 잃을 수 있고 기존의 플루토늄 양과 고농축 우라늄 규모를 적용하더라도 60개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13~21개로 추정하며, 비밀리에 다른 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더라도 북한의 설비 능력으로는 2~5개 정도 추가할 수준이라고 분석했었습니다.
지그프리트 박사도 핵과학자회보에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을200kg~450kg으로 추산하며, 플루토늄까지 합하면 핵무기 20~25개를 만들 수 있는 규모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군사전문가와 단체들은 최근까지 북한이 플루토늄 40~50kg, 고농축 우라늄 300~400kg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일부 언론은 지난 2월 국방부 대외비 문건을 인용해 북한이 2016년을 기준으로 고농축 우라늄 758kg, 플루토늄 54kg을 보유해 최소 46에서 최대6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었습니다.
핵탄두 1개에 플루토늄 4~6kg, 고농축 우라늄 16~20kg이 필요하다고 볼 때 플루토늄 탄 9~13개, 고농축 우라늄 탄 37~47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과 한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기존의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늘린 사실과 제2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관한 정보를 확보해 이런 규모를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엘러먼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추가로 1~2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미 정보 당국이 확인했다면 핵무기 최대 60개 추정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 정보당국은 언론 보도와 전문가들의 부정적 견해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