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러시아 연루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최근 대배심을 구성했습니다. 대배심은 미국 배심원 제도의 하나로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를 기소하기 위해 구성되는데요. 소환장 발부와 증인 출석, 자료 제출 요구 등의 권한을 갖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 배심원 제도에 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배심원 제도란 무엇인가”
배심원 제도란 쉽게 말해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해 범죄의 사실 여부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사법제도를 말합니다. 즉, 법을 공부하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것인데요. 판사와 검사같이 법조인이 있는데 왜 굳이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재판 결과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서 판결이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배심원제는 시민들이 재판 과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 것입니다.
배심원제는 미국과 영국, 러시아, 스페인 등에서 채택하고 있고, 배심원제를 강화한 시민 재판관 형태의 참심제를 운영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요. 특히 미국과 영국은 배심원 제도가 가장 활발히 시행된 국가로, 배심원 제도는 초기부터 영미권을 중심으로 발달해왔습니다.
“배심원 제도의 기원과 역사”
배심원 제도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에 의해 운영됐던 것이 시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 아래에서 30세 이상 시민 남성 수천 명 중 지명된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는 모든 재판이 시민들에 의해 이뤄졌고, 시민 배심원들이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들은 후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근대 형사 사법제도에서 볼 수 있는 배심원 제도와 유사한 초기 배심제도는 12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배심제도가 보편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영국의 헨리 2세의 통치 시기인 12세기 후반부터인데요. 당시 헨리 2세는 마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배심원 쥬라레(jurare)를 구성하고, 범죄 용의자들은 이들이 기소해야지만 법원에 회부되었다고 합니다. 쥬라레는 라틴어로 ‘진실을 말하겠다고 맹세한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요, 여기서 배심원을 뜻하는 단어 'jury'가 나왔습니다.
“초기 배심원 제도”
헨리 2세는 당시 교회와 봉건 영주들을 억누르기 위한 목적으로 배심제도를 활용했습니다. 각 지방에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교회와 봉건영주들이 법 집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인데요. 이를 위해 헨리 2세는 용의자를 재판에 회부하기 전에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자유인 12명을 뽑아 기소 내용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는 직무를 부여했습니다. 초기 배심은 이처럼 기소를 위한 대배심 제도로 운용되었고, 그 수는 16명 이상 23명 이하로 구성되었는데요. 이런 내용은 1215년 제정된 영국 대헌장(Magna Carta)에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에는 신성 재판이 널리 행해지던 시기였는데요. 이 때문에 기소 여부에는 배심원이 개입할 수 있었지만 피고의 유, 무죄를 가리는 일에는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신성 재판이란 용의자에게 신체적 고통을 줬을 때 죄가 없다면 신의 보호로 참아낼 수 있지만, 유죄라면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죄의 유무를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 재판 형식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물에 빠뜨려 용의자가 물에 뜨면 무죄, 가라앉으면 유죄로 판단하는 원시적인 재판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1215년 신성 재판이 폐지되면서 기소뿐만 아니라 피고의 죄를 가리는 판단을 할 배심원의 필요성이 요구되기 시작했는데요. 즉, 지금의 소배심 역할을 할 배심원제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 배심원제는 국왕이나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제도라기보다는 국왕의 예속 기구로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 왕의 뜻을 거스르는 평결을 한 배심원단은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날 민주적 배심원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배심원제도”
미국은 세계에서 배심원 제도가 가장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나라로서, 배심원 제도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민의 기본 권리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미국 시민권자라면 누구나 배심원으로 선발되어 재판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형사재판에서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적용되는데요. 민사재판에서도 원고가 피고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 배심원 재판을 받을 권리가 주어집니다.
배심원 선정 요건은 각 주에 따라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18살 이상의 미국 시민권자로 영어를 잘 구사하고 범죄 경력이 없는 사람 가운데 선발하는데요. 보통은 투표를 할 수 있는 유권자 등록을 한 선거인 명부에서 선출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배심원제를 나눠볼 수 있는데요. 형사 재판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grand jury)과 유죄냐 무죄냐를 결정하는 소배심(petit jury)으로 나뉩니다.
“대배심과 소배심”
먼저 사람들이 보통 떠올리는 배심원제는 소배심입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시민들이 재판에 참여해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합니다.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일부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 배심재판은 판사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따라야 하는데요. 사실 배심원단은 유, 무죄에 대한 평결만 내릴 뿐이고 실제 판결은 재판장이 직접 하지만, 배심원단의 판단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명백한 법적, 절차적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대배심은 조금 낯설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요. 쉽게 말해, 범죄 용의자를 재판정에 세울 것인지, 검찰이나 경찰 같은 국가 기관과 함께 배심원들이 참여해 결정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수정헌법 5조에는 ‘대배심에 의한 고발이나 기소가 있지 않는 한, 사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에 대해 그 누구도 심리를 받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는데요. 그러니까 중범죄는 반드시 대배심의 심리를 거쳐 기소하도록 헌법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대배심은 먼저 검찰 측이 대배심을 소집해서 기소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진행되는데요. 그러면 대배심들이 검사의 기소가 정당한지,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를 심사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검사와 증인의 의견을 청취한 후에 기소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보통 형사재판에서 소배심의 경우는 12명의 배심원이, 민사재판에는 6명 이상이 참여하게 되는데요. 반면 대배심에 참여하는 인원은 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최소 16명에서 최대 23명에 이릅니다. 즉 소배심과 대배심은 참여하는 인원의 숫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는 조금 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소배심의 재판은 하나의 사건을 공개적 재판으로 다루고 검찰로부터 최종 증거자료를 제출 받아 심리를 하는데요. 반면 대배심은 비공개적으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재판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도 스스로 조사할 수 있습니다. 또 소배심 재판에서는 배심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피고의 유죄 여부를 결정하는데요, 대배심에서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소배심 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검사의 기소 내용과 그에 반대하는 피고의 변론을 모두 들은 후에 결정해야 하는데요, 대배심원은 검사의 증거만 심사해서 기소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배심원제도에 따른 논란”
시민의 법적 권리 보호와 민주주의 가치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그러나 논란도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퍼거슨 사태를 들 수 있는데요. 지난 2014년 미국 중부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당시 18살 흑인 청년이었던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인 대런 윌슨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브라운은 총기를 휴대하지 않았지만 윌슨 경관의 총에 맞아 숨졌는데요. 이 때문에 구성된 당시 대배심이 백인 경찰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촉발하기도 했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때 대배심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원래 대배심은 피의자의 증언 청취 없이 검사의 증거만 심사해서 기소할 수 있는데, 당시 대배심이 피고인 윌슨 경관의 증언을 직접 들었고, 또 법률적 지식이 없는 대배심에게 검찰이 윌슨 경관의 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었습니다.
[녹취: 벤저민 크럼프 변호사]
이와 관련해 브라운 가족의 변호인이었던 벤저민 크럼프 변호사는 “윌슨 경관은 기소됐어야 했다며, 대배심 제도는 망가졌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소배심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되는 유명한 사건이 있는데요. 바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OJ 심슨의 사건이었습니다. 지난 1995년 당시, 심슨이 연루된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흑인 9명, 중남미계 1명, 백인 2명이 배심원으로 참여했는데요. 흑인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배심원단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같은 흑인인 심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녹취: OJ 심슨 재판]
심슨의 재판 당시 무죄 평결이 내려지고 환호하는 심슨 측 변호인단의 소리를 들어보셨는데요. 당시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의 흑인들은 심슨이 무죄라고 생각한 반면, 백인들은 유죄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배심원단의 구성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배심원제는 여러 명의 배심원단이 뜻을 모아 판단하기 때문에 검사나 판사의 독단을 막고, 조금 더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률적 전문성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합리적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에서, 이를 보호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배심원제는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의 배심원 제도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조상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