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북한 문제를 “중재”할 위치에 있지 않고 미-북 대화를 촉진할 역량도 없다고 링컨 블룸필드 전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가 밝혔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활동한 블룸필드 전 차관보는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최근 북한 문제에 부쩍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관련해, 북한을 고객처럼 대하는 러시아가 그런 역할을 맡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미-북 간 군사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며,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블룸필드 전 차관보를 이조은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러시아가 미-북 대화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의도는 뭘까요?
블룸필드 전 차관보) 러시아에는 북한 노동자가 많습니다. 유엔이 최근 채택한 새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를 일정 기간 내에 귀국시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그런 의무를 지게 됐고요. 이 부분만 봐도 러시아는 유엔 결의 이행 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강한 동기가 있다고 봅니다. 미-북 대화에 러시아의 ‘중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러시아는 이 문제에 분명히 이해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미-북 접촉에 러시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러시아가 과연 북한을 대화에 나서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러시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제어하는데 어떤 적극적인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북한을 마치 고객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기자) 만약 미-북 접촉에 러시아가 역할을 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중동이 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러시아의 중재로 시리아 평화회담이 열렸을 때 미국은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인들에게 어떤 혜택도 가져다 주지 못했고요. 결국 러시아는 외교적 절차에 발동을 걸었지만, 반인륜 범죄에 참여했다고 봅니다. 러시아가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고 민간인들을 위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과거 외교 행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아직 그런 업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기자)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러시아-중국 대 미국-일본 구도가 두드러지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미국의 이익에 대항해 러시아와 중국이 연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 경제 강국입니다.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북한 등 특정 문제를 놓고 전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할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 있어 여전한 딜레마는 추가 대북 압박을 유도하기 위해 중국에 어떠한 종류의 유인책을 적용해야 하는가 입니다. 최근 중국은 북한에 유류 공급을 제한하는 등 긍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미래에 대해 더 나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한국과도 그렇고요. 러시아가 이 과정에 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자)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과는 거리를 두고, 사드 등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러시아와 보조를 맞춘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굳건한 미-한 동맹이라는 공식 기조 이면엔 미국 정부의 우려가 있다고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양국 관계에 기복은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굉장히 강하고 질긴 유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군사 동맹도 강하고요. 두 나라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견은 조정돼야 합니다. 미국은 또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 더 결단력 있고 추가 대북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어떻게 유인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한국과 진중히 논의해야 합니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은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중국이 한국에 압박을 가하면서 한국과 중국 간 우호적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 한국에선 남북 경제협력 사업인 개성공단 재개 목소리가 정부 당국자들을 통해 나오기도 하는데요.
블룸필드 전 차관보) 저는 북한의 경제 거래가 지속되게끔 하는 어떤 제안도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핵, 미사일 개발 확산 등 불법 활동에 이용된다는 정보가 상당히 많으니까요. 북한의 불법 경제 활동을 제어하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는 무엇이든 우려를 자아낸다고 봅니다. 한국 정치는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과 조금 더 유화적이고 개방적인 노선 사이를 시계 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가지 말한다면, 북한이 한국의 성공에 노출됐을 때 심오한 효과를 낳는다고 봅니다. 자신들의 나라는 경제적 지원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시키는 효과죠. 그래서 때때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노출되도록 하는 창구를 열어주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은 위협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게 근본적인 원칙입니다.
기자) 지난 행정부 당시만 해도 백악관과 국무부에서 한반도 통일을 북 핵 문제 해결의 유일한 대안으로서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요. 그러나 틸러슨 국무장관은 통일을 가속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식화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트럼프 행정부의 특징을 규정하기는 조금 어려운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초점은 어떤 것보다도 위협에 맞춰져 있습니다. 기존 행정부에서 외교, 또는 외교를 위한 외교를 추진해왔지만 북한의 위협을 성공적으로 제거하진 못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적으로 위협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정책에 있어 한 가지 공식만을 따라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습니다. 예측할 수 없으며, 충분하지 않은 것에 만족하지 않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지는 주관식 질문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봅니다.
기자) 그렇다면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블룸필드 전 차관보) 미국의 행동 계획이 무엇인지 시사한다고 봅니다. 문제를 불러오는 건 미국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트럼프 행정부는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북한이 어떤 대본을 따라야 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주체를 북한, 한 쪽으로만 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나머지는 모두 뒤에 제쳐뒀고요. 1차적인 문제는 북한의 위협입니다.
기자) 미 전현직 관료들 사이에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개인적으로 군사 옵션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군사적 충돌이 억제될 것이라고 안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은 군사 충돌 시 북한 정권은 형편없이 패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북한이 어떤 적대 행위를 벌이든 극도로 무모하고 위험한 움직임이 될 겁니다. 북한의 적대 행위가 절대 성공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미국의 군사 역량은 이미 상당합니다. 만약 북한이 적대 행위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아마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겁니다.
기자)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핵 미사일을 발사대에 올려 놓기 전에 그런 능력을 갖는 것만으로도 미국은 군사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수뇌부를 통해 흘러 나옵니다. 주권국가로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물론이죠. 미국은 원하면 북한의 무엇이든 겨냥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론 미국은 당연히 군사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조치를 취할 때 미-북 간 군사 충돌이 제어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군사 조치를 취하는 순간 전쟁이 개시될 테니까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만, 저는 군사 행동을 생산적 방법으로 장려하진 않습니다.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승리를 거둘 테지만 승리자에게도 기회 비용은 크니까요.
기자)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이 있을까요?
블룸필드 전 차관보) 제가 선호하는 정책은 미사일 방어망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보다 미사일 방어에 주력하는 것을 더 타당한 자기방어 행동으로 여길 겁니다. 제가 제안하는 전략은 괌에서 일본까지 태평양 라인을 따라 미국의 강력한 미사일 방어 해군 자산을 재배치하는 2~3년 간의 포괄적인 계획입니다. 중국이 환영할 시나리오는 아니겠죠. 그런데 김정은은 괌과 미 본토에 핵 미사일 위협을 가하고 있고, 일본 상공으로 미사일까지 발사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동맹국가들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할 권리가 있습니다.
기자) 미국이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해 미국에 대항할 것으로 보십니까?
블룸필드 전 차관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지어 추측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냉전 당시에도 미국을 중국 또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위치에 놓는 수준의 고조 상황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초강대국으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파괴 단계로 상황을 고조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추측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러한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이 기울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링컨 블룸필드 전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로부터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