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체제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체제 비판이 빠진 대북 확성기 방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현진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녹취: 자유의 소리 방송 시작음] "종소리, 여기는 자유의 방송입니다"
지난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에 대응해 전면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북한이 민감하게 대응해 오던 대북 확성기 방송 내용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부터 변경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학용 한국 국회 국방위원장 의원실 관계자는 2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김학용 의원실 관계자] “지금은 김정은이 됐든 북한체제가 됐든 직접 비판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작년 말부터 김정은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데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북한을 대놓고 자극을 하면 북한이 반감을 가질 수 있으니 체제에 대한 대놓고 비판은 작년 말부터 수위를 낮춰서 하기로 했다는 합참의 지시를 받았다는 그런 설명이었습니다. ”
국군심리전단이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의 북한 비난 수위가 낮아진 이유를 묻는 김학용 의원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는 설명입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북한 비판 수위가 “미사일 시험발사에 예산을 많이 써서 주민들이 고생한다”, “고위층은 호의호식하는데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정도로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와 관련해 합참 노재천 공보실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심리전 작전 내용에 대해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제한된다며, “다만, 군은 작전 목적과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적용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도 대남 확성기 방송에서 남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22일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서 우리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줄어든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방송 시간과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장성급 회담 대표를 지낸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 김정은을 대놓고 비난하면 오히려 심리전이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조치를 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을 대화로 끌어 내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지금 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가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말하자면 서로 간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비방, 중상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조치라고 볼 수 있죠.”
문 센터장은 하지만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위원장이나 북한 체제를 직접 비난하는 내용을 삭제하는 것이 남북대화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체제 비난이 남북대화의 걸림돌은 아니며, 북한이 핵을 내려 놓지 않는 대화는 실질적 교류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체제의 문제점과 실상을 알리는 노력이 축소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어쨌든 김정은 북한 정권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히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북한이 이것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거거든요.”
반면 한국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자체를 중단하지 않은 만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남북관계는 비핵화를 넘어서 통일로 가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가져가겠다는 입장이거든요.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것, 이런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죠. 헌 단계에서. 또 심리전의 효과에서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외부 정보의 전달에 큰 효과가 있거든요.”
하지만 한국 내 탈북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인민군 대위 출신으로 현재 투병 중인 김성민 씨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에서 “독재를 향한 경고와 비판 없는 방송이 무슨 심리전 방송”이냐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인민해방전선의 최정훈 대표도 22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녹취: 최정훈 대표]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아직도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에 외부 정보가 못 들어가니까 북한에서 선전선동하는 것을 주민들이 곧이 믿고 있다고요. 김정은이를 비난하고 김정은도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줘야죠.”
김학용 의원실은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체제 비난이 빠진 대북 확성기 방송은 별 의미가 없다며,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김학용 의원실 관계자] “그게 다 같이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냥 걸그룹 노래 틀어줄 거면 기존의 방송 틀어주면 되는 거지 굳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국군심리전단을 만들어서 뭐하러 그렇게 하나요? 국군심리전의 목적하고 안 맞다는 거죠.
한국전쟁 휴전 후 수십 년 동안 방송과 중단을 거듭해온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뒤 방송을 재개해 지금까지 송출하고 있습니다.
방송은 하루 2~6시간 500W급 대형 스피커 48개로 구성된 확성기 40여 대를 통해 송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고정식 확성기는 10km 이상 거리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VOA 뉴스 김현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