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최근 유화적 공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의 중국 방문, 그리고 리설주에 대한 호칭 변화에는 모두 정상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풀이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 이미지를 벗고 정상국가로 대접받으려면 실질적인 국내외 정책이 모두 변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지난 2월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에 대한 호칭을 ‘동지’에서 ‘여사’로 바꿨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리설주 여사와 김영남 동지, 최룡해 동지…"
북한에서 과거 ‘여사’호칭을 받는 인물은 김일성 주석의 어머니인 강반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낳은 부인 김정숙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설주는 또 지난 2월 군 열병식에 처음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주석단에 함께 서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최근 김정은의 중국 방문에도 동행해 시진핑 주석 부부와 나란히 조명을 받는 등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들은 또 최근 기존의 “우리 공화국”이란 표현과 함께 “우리 국가”란 표현을 섞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응원단, 김여정과 고위급 대표단의 한국 방문,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의 평양 방문, 한국 예술단을 평양에 불러 가요를 부르도록 허용한 것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 많은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은 기존의 ‘불량국가’ 이미지를 탈피하고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한미경제연구소(KEI)의 마크 토콜라 부소장입니다.
[녹취: 토콜라 부소장] “I thinks it’s the attempt to appear to be normal country…”
외교를 통해 좀 더 정상적인 관계를 시도하며 정상 국가 이미지를 외부에 보이려는 의지로 보인다는 겁니다.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불량국가로 지탄받아 왔습니다.
과거 북한의 ‘불량국가’를 주제로 장문의 보고서를 썼던 박형중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량 국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아주 좁은 의미는 국제법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국가인 거고요. 서방국가에서는 국가 이미지가 악마화 돼있는 상황이죠. 불량국가란 것은.”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는 고모부와 이복형을 죽이고 주변의 엘리트들을 고사총으로 쏴 죽이는 등 일종의 악마 이미지까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북한은 유엔안보리의 결의와 규탄을 비웃듯 핵·미사일 개발을 강행하고 한국 등 이웃 나라를 자주 협박할 뿐 아니라 자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평판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이 때문에 서방세계뿐 아니라 개발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인권 탄압을 묘사할 때 ‘아프리카의 북한’, ‘여기가 북한인가?” 등 북한을 최악의 기준으로 삼는 사례들이 빈번해졌습니다.
지난해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영국에서 개최한 에리트레아 정권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에서도 현지 실태를 북한에 비유하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시위자들은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북한”이란 손팻말을 들고 에리트레아에서 철저한 검열과 통제, 인권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고 규탄했습니다.
북한 정권의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지척에 있는 한국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초등도덕교육학회가 지난 2013년에 초등학교 상급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북한 이미지 조사 결과 북한을 적대국·독재국으로 보는 시각이 동반국·동포로 보는 시각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박형중 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이미지 연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 “국제무대에 말 그대로 정상국가, 정상적인 지도자로 대접받고 싶은 거고 그런 차원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 연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내 정치적으로 통치 방법이 달라졌거나 예를 들면 수용소가 없어졌다거나 그런 거는 아니죠”
박 위원 등 일부 전문가는 북한 정권이 이런 이미지 개선과 연출을 통해 한국 내 여론을 움직여 정부의 대북 정책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 공연단의 평양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한국 가수들과 기념사진까지 촬영한 소식은 한국에서 대대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의 협조 없이 한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이런 긍정적 호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청와대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리설주를 여사로 호칭하고 천안함과 김영철을 분리하는 등 정치적 거래를 시도했기 때문에 대중 매체도 이에 협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실질적인 정상국가로 대접받으려면 이런 이미지가 아니라 대내외 정책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한미경제연구소의 토콜라 부소장은 북한이 미-한 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도 몇 달째 발사하지 않는 것 등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토콜라 부소장] “If they want to be accept by community, they need to hear to UN security…”
북한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제시한 유엔안보리의 대북결의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의 권고안을 북한 정권이 실제로 이행할 때 북한이 원하는 것처럼 정상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박형중 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우선적으로 옛 소련 정부가 스탈린이 사망한 뒤에 취한 정책을 편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스탈린이 죽었을 때 국내 정치적 해빙이라고 했거든요. 문화적으로 통제가 완화되고 굴락-수용소가 해체되고 엘리트들에 대한 신변안전이 일정하게 보장됐습니다. 적어도 시도 때도 없이 비밀경찰이 와서 나를 잡아가는 상황은 없어진 거죠. 국내 정치적으로는 인민 생활을 위한 진짜 정책이 시작되고 대외적으로는 긴장 완화가 시작되고. 최소한으로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정책이 진행된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죠”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