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납북자 가족들과 탈북자들은 이번 남북정상 회담에서 자신들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평화 분위기 속에 납북자와 북한 인권 문제가 가리워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올해 86세인 최광석 씨는 1950년 9월17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공산당에게 붙들린 아버지 최준 씨와 헤어진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이후 최 씨는 아버지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7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녹취: 최광석 씨] “저하고, 아버지하고 같이 붙잡혀 갔어요.”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아버지 최준 씨는 당시 북한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학생들이 다니던 대광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한 이후 피난 시기를 놓쳐 서울에 남게 됐는데 지금의 '탈북자'처럼 조국을 버렸다는 이유, 그리고 기독교 장로라는 죄명으로 붙잡힌 겁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최 씨는 다른 이북 출신 친구들을 붙들어 오라는 지시를 받으며 나흘 뒤 풀려났지만, 아버지는 그 곳에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문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아버지와 헤어졌던 그 날이 바로 9월17일이었습니다.
[녹취: 최광석 씨] “제가 우리 아버지 보고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딱 거수 경례를 해서 '아버지 나 갑니다.' 이건 내가 군인돼서 원수 갚겠다는 의미였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사나이가 눈물이 무슨 눈물이야. 눈물 흘리면 안 된다. 나가서 할머니 모시고, 어머니 모시고, 동생들 데리고 잘 살아라.' 이랬다고. '잘 살아라.'”
이후 국군에 입대했지만 아버지를 구출하지 못한 최 씨. 오랜 세월 아버지를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괴로웠지만,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기고 노년에 접어들면서 점점 옳은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광석 씨] “이게 불효자거든요. 자기 아버지가 고문을 받는데, 그걸 어떻게 두고 나옵니까. 그런데 우리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랬을 거야. '저걸 하나 살렸구나. 저게 가족을 거둬주겠지.' 본인은 끌려가지만 안심하고 가지 않았을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최 씨는 얼마 전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6.25 납북자 문제가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재 6.25 전쟁 당시 납북된 사람은 9만5천여명. 납북자 가족들은 이번 남북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수 십 년 간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 혹은 최소한 생사 확인 여부라도 알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한국 내무부 치안국 소속 경위였던 할아버지 최홍식 씨가 북한에 끌려갔다는 손녀 최유경 씨도 같은 바람이었습니다.
[최유경 씨] “이 분들이 이제 언제 다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어렵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들은 지난 68년 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최 씨의 아버지는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 때도 실낱 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 2015년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가 납북될 당시 생후 4개월이었던 하영남 6.2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는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녹취: 하영남 이사] “아주 원초적인 6.25 사건이 대단한 건데, 문재인 대통령은 기대할 만 한데 6.25 전쟁으로 인해 납북된 가족들을 위로하고 혹시 납북자가 이북에 아직 남아 있는지, 그게 의제로 충분히 북한에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거거든요.”
6.25 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한국 정부가 당장 북한이 납북자 문제에 대한 시인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반드시 이 문제는 정부가 자국민을 책임지고 북한을 만날 때 얘기를 해라. 북한이 어떻게 반응을 하든...”
이 이사장은 최근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약 2천명의 남한 민간인을 학살한 내용을 담은 미군의 보고서를 입수해 'VOA'에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학살 피해자 대부분은 서울과 개성 지역 공무원들이었습니다.
북한의 인권 유린을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탈북자들도 북한 인권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조성된 평화 분위기가 북한 인권 문제를 영원히 덮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습니다.
탈북자 강철호 목사입니다.
[강철호 목사] “이번 모처럼 정상들이 모여 회담을 하는데 탈북민들의 인권 문제 그리고 저 북한 동포들의 인권 문제도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 목사는 인권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 평화를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이 북한 문제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북한 인권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며, “여전히 북한 주민들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무참히 죽어간다”고 강조했습니다.
강 목사는 이런 우려에 따라 탈북 기독인 약 1천 명이 정상회담 하루 뒤인 28일 서울의 한 교회에 모여 특별기도회를 겸한 인권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강제수용소 수용자 출신의 탈북자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 주민들의 삶에 얼마 만큼의 개선이 있는지 여부로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김정은이 기분이 좋거나, 자기들의 필요성에 의해 대화를 한다고 해서 그게 평화라는 개념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남북관계에서의 평화라는 이미지가 북한 주민들을 아무렇게 해도, 방치해도 평화… 그런 식의 평화는 사실은 가짜 평화라고 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