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모호하며 실제로 이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가 밝혔습니다. 갈루치 전 특사는 30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 결정은 ‘쇼’에 불과하다며,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에 포함된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 금지’ 문구가 북한 비핵화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특히 언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다정한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며, 미국은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와는 관계를 정상화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갈루치 전 특사를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과거 이런 상황들을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한 뿐만이 아니라 미-북 관계 정상화로 향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였다고 봅니다.
기자) 판문점 선언을 과거 합의 내용의 반복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그 가운데서도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과거에도 이런 상황에 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는 건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하겠다는 ‘의도’를 담은 선언들을 이미 봤다는 겁니다. 과거 저희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게 하는 검증 등의 세부 절차를 밟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죠. 과거에 이런 상황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예’가 될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조치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대답은 ‘예’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잘 되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역시 과거로부터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기자) 이번 판문점 선언에도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가 담겼습니다. 한반도 비핵화가 무슨 뜻입니까?
갈루치 전 특사) 저는 북한이나 미국이 지금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한반도 비핵화라는 뜻은 북한을 비핵화하는 겁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핵 물질과 관련 시설들을 포기하는 건데요.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하는데 일부는 검증이 되겠지만 모든 사안들을 검증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 물질을 포기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미국은 이를 원하겠지만 모든 걸 다 검증할 수는 없습니다. 핵 물질은 매우 작습니다. 북한이 자국 내에 ‘콜라 캔’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도 없는지 직접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저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어떤 게 가능할지 알아봐야 한다고 봅니다.
기자) 그렇다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이나 제한을 현실적인 목표로 둬야 한다는 뜻입니까?
갈루치 전 특사) 저는 목표가 동결이 돼야 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동결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남아 있으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북한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은 폐기 계획을 밝힌 핵 실험장에 미국과 한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이런 행동 역시 본 적이 있지만 긍정적인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쇼’에 그친다고 생각하는 데요. 핵 실험장에는 핵 실험 당시 사용하는 갱도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은 다시 지을 수 없는 것들이 아닙니다. 불가역적인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북한이 이런 행동에 나선 게 기쁘긴 하지만 이를 통해 너무 안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을 언급했습니다. 해당 선언이 북한 비핵화를 위한 하나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은 한국과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문서입니다. 북한과 한국 모두 핵무기는 물론 핵 물질을 생산하는 역량을 제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기술 등을 말하는 건데요. 저는 해당 선언과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북한에 상기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둘 다 없습니다. 북한 역시 같은 상황이 돼야 합니다. 북한은 현재 두 시설 모두 갖고 있습니다.
기자) 볼튼 대사는 비핵화 방법으로 ‘리비아 모델’ 역시 언급했는데요. 가능한 방식으로 보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저는 볼튼 대사가 사용한 단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에 생긴 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리비아 사례를 언급하며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볼튼 대사가 정확히 원하는 비핵화 방식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리비아 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판문점 선언에는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내용이 담겼습니다. 한국만 양보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갈루치 전 특사) 한국이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공격적인 행동은 중단될 수 있습니다. 양쪽이 같이 말이죠. 북한도 벌써 많은 양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확성기와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되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이를 포기한다고 해서 한국의 안보가 크게 위협받는 것도 아니고 북한에게도 그리 큰 선물은 아닙니다. 상징적인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기자) 최근 김정은은 자상하고 귀여운 지도자라는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북 정상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이런 높아진 기대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갈루치 전 특사) 북한 정권과 지도자가 따듯하고 다정하다는 이미지를 만든 데는 언론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이 정권의 잔혹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으며 정치범들은 가장 참혹하고 폐쇄적인 정권의 피해자들입니다.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관계 정상화를 요구할 겁니다. 정상화는 서로가 서로의 조건을 맞춰야 합니다. 미국은 이런 인권 유린 정책을 펼치는 국가와는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습니다.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평화협정이 갖는 의미 역시 매우 적다고 봅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 한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