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전직 군 장성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의 군사 대비태세 약화를 우려했습니다.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안보는 맨 나중에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서울에서 함지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 '육군협회'가 22일 개최한 '2018 국방 세미나'에선 군 원로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남북정상회담부터 미-북 정상회담까지의 일련의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걱정이 많이 된다”며, 현재 북한의 주장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신일순 전 부사령관] “이렇게 가다가는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포기하고 양보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주한미군 철수가 이뤄지고, 평화협정이 체결돼 북한의 기본전략대로 가는 게 아닌가.”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녹취: 김재창 전 부사령관]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을 없애겠다고 하는 대전략 차원의 노력은 강력히 권장합니다. 그러나 군사 분야의 대비태세의 손상을 가져오면서 하는 정책은 위험하다..”
원로들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가 확고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한 연합훈련은 물론 태극훈련과 같은 한국 군 단독훈련이 연기되고, 대북심리전 수단인 확성기가 철거된 사실을 비판했습니다.
특히 군의 정책 방향이 북한이 비핵화를 이룬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면서,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경우엔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까지 군에 몸을 담았던 국방 정책 전문가들도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 동참했습니다.
한국 합동참모부 작전본부장을 지낸 신원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4월27일 남북 정상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적대 행위 전면 중지' 조항은 군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신원식 연구위원] “(판문점 선언이) 긴장조성 행위를 모두 적대 행위로 봤습니다. 맥스 선더는 공중에서 긴장 조성이고요. 태영호 공사는 기타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긴장을 느끼는 북한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대한민국과 한-미 동맹이 할 수 있는 정상적 모든 활동을 적대 행위로 분류할 수 있는 만능의 보험을 북한에 싸인해 준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얘기한 겁니다. 판문점 선언 전에는 내가 좀 양해를 했는데, 판문점 선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니들이 위반하느냐. 그랬더니 중국이 맞다.”
신 연구위원은 '미-한 동맹'과 '자주국방 태세'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제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신원식 연구위원] “북 핵 관련해선 우리가 받을 비핵화라는 것은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받으려고 할 때 지금 중요한 건 우리의 본전을 잃어선 안 됩니다. 구조적 한계에 있는 비핵화를 위해서 우리가 절대로 줘선 안 되는 한-미 동맹과 자주국방 태세를 보상으로 줘선 안 됩니다.”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북한이 확고한 비핵화를 이루는 상황을 가정하고,이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군사적 우려사항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녹취: 김용현 전 작전본부장] “북한은 비핵화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재래식 전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비핵화가 진전되는 과정, 그리고 군비통제가 논의되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충돌이나 국지도발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고 있습니다.”
김 전 작전본부장은 “북한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남측의 불리한 군비통제를 유도하거나 주도권 확보를 위해 남남갈등을 지속적으로 조장할 수 있는 그런 행동들을 계속할 수 있다”며, 평화 구축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우발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안보 상황은 정치 상황보다 한 단계 뒤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군 원로들의 우려에 공감했습니다.
[녹취: 신인균 대표] “군사 대비태세가 정치 상황보다 앞서 나가선 안 돼요. 정치인들이 조급한 건지 모르지만 군사 대비태세를 너무 빨리 땡겨가고 있습니다. 지금 해빙무드가 영원히 지속될 거다 생각할 수 없어요. 한반도의 봄이라고 해서 개구리가 땅을 박차고 나오려고 하는데 안보 태세가 반팔을 입으려고 합니다. 안보태세가 아직은 겨울이어야죠. 정치 상황이 여름으로 갔을 때 (안보가) 봄을 맞아야지, 아직 봄도 안 왔는데 안보 대비태세, 한-미 동맹, 연합군사훈련 이 모든 게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지만 현직 국방부 고위 관리는 “현 정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원로들을 달랬습니다.
김윤태 국방부 군 구조·국방운영개혁추진실장입니다.
[녹취: 김윤태 실장]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우리 국방은 안보의 최후의 보루로써 중심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의 말씀과 생각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보 상황이 변하더라도 앞으로 국방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고, 더 국방이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국방이 강화돼야 하고,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현 정부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참고하고, 저희가 받아들일 얘기 많이 주셨습니다.”
또 육군참모총장을 대신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정수 수방사령관은 “한반도 위기는 늘 있어 왔다”며, “선배님들이 주신 좋은 가르침을 새기고, 국방을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군 출신 안보 전문가인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로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사실 우리가 0.01%의 안보 위협도 준비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건 당연한 거죠. 군에 몸 담았던 분들의 신념이기 때문에...”
그러나 최근 조성되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와 미-북 간 대화 국면에서 진행되는 일부 안보 관련 이슈에 대해 “북한에 기회를 줄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쌍방의 문제잖아요. 일방의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대화를 하는 입장에서 하는 것이 내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못 믿는다고 하면 문제가 안 풀리잖아요.”
김 교수는 미-한 연합훈련의 규모가 축소되거나 잠시 연기된다고 해도 한국의 국방 대비태세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서, “기회를 얻은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훈련을) 재개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