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0일 남녀평등권법령을 공포한 지 72주년을 맞았습니다. 북한은 법과 제도적으로 여성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엔 등 국제기구와 단체들, 탈북 여성들은 모두 북한 정부의 주장이 사실과 매우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미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은 여성이 법적 보호를 받으며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미국의 상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개최한 북한 관련 심의회.
여러 위원이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행 방지 교육이 거의 없고 가해자 처벌도 매우 미흡하다고 지적하자 북한 당국자는 폭행이 거의 없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녹취: 북한 당국자] “복종 관계에 있는 여성을 강요하여 성교한 죄에서 강요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폭력이 아니고 회유와 기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즉 생명과 건강을 침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벌의 도수가 낮아졌다는 것도 좀 틀리는 말은 아닙니다.”
이 당국자는 오히려 여성이 이익을 노리고 접근하는 상황을 강조해 위원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녹취: 북한 당국자] “가해자의 요구를 허용하면서 일정한 자기 개인적 이익도 보려는 심리가 작용한 경우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낮은 형벌을 적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여러 위원은 국제 인식과 동떨어진 이런 답변에 화를 내며 실태 확인과 개선책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답변을 요구했지만, 북한 대표단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특히 가정 내 폭력은 북한에서 사회 문제가 될 수 없다며 북한은 이미 1946년 발표한 ‘조선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 공포를 통해 남녀평등이 이미 실현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는 당시 법령이 북한 여성의 문맹 퇴치와 사회 참여 등 일부 여성권 신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남녀 차별 등 북한 내 여성 권리 실태는 여전히 국제 기준에 크게 부합하지 못한다는 게 유엔의 공식 입장입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이 때문에 지난 11월 20일 북한 심의 결과를 담은 최종 견해에서 북한 내 가정 폭력과 성폭력이 심각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 대책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 정부의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북한 교원 출신으로 미국 남부에 사는 탈북 난민 매리 씨는 해마다 7월 30일이면 북한에서 ‘남녀평등권법령’ 공포일을 기념하는 선전 행사가 열리지만, 여성들은 관심도 없고 무척 냉소적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매리 씨]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가지죠. 근데 표현을 할 수 없고 사회가 몽땅 그렇게 돼 있으니까. 지옥에 사는 사람은 그곳이 지옥인지 모르는 것처럼 그 사회 전반이 그렇게 돼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게 돼 있거든요.”
매리 씨는 북한 정권이 “여자도 수레바퀴”라며 남녀평등을 선전하지만, “필요와 의무만을 강조할 때만 활용할 뿐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녀평등은 교과서에서만 나오는 말로 북한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출세에 제한이 있고 가정을 부양해야 할 책임까지 떠맡고 있다”는 겁니다.
황해남도에서 10년 간 여군으로 복무했던 미 서부의 탈북 난민 제니퍼 씨는 군대에서 상관들의 성폭행이 만연돼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제니퍼 씨] “군대에 나가서 상사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걸 어디 가서 법에 가서 찾아서 생각을 못 해요. 일단 그런 게 없으니까. 항상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거죠. 법으로 해서 소송한다? 그 자체가 안돼요.”
성폭행 문제를 호소할 방안도, 여성 보호를 위한 교육이나 보호 장치도 없기 때문에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의 헤더 바르 여성권리 담당 선임연구원은 30일 VOA에 남녀 평등과 여성의 권리가 완벽한 나라는 없지만, 북한은 성폭력 등 여러 분야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국가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바르 선임연구원] “it’s a whole different level. What happing there in terms of…”
북한에서는 정부가 여성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우 오히려 정부 당국자들이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추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르 선임연구원은 북한 측 주장대로 남녀평등이 완벽하다면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며, 북한 정부가 주장하는 법과 발언이 여성들의 일상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미국도 최고의 남녀 평등 제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법을 집행하는 기능은 작동된다며, 북한도 이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바르 선임연구원] “Elements that you need to actually have functional system to address violence into women…”
여성에 대한 폭력이 법적으로 분명한 범죄이고 폭력 행위를 세분화해 처벌하는 적법한 제도가 있어야 하며, 경찰의 철저한 법 집행과 검찰의 기소, 법원의 공정한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또 여성이 가정에서 배우자에게 폭력을 당한 게 확인되면 여성을 격리해 보호할 수 있는 시설과 이 여성의 권리를 대변할 변호사를 제공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정부의 의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들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북한 여성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 중서부에 사는 탈북 여성 제니퍼 씨입니다.
[녹취: 제니퍼 씨] “북한에서는 우리 여자들이 다 하고 뭐든지 다 여자들이 해서 살 수 있게끔 하는 게 여자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 오니까 아니다. 남녀평등에 대한 차별 없이 모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곳이 미국이라고. 노력만 하면. 여자가 꼭 밥해서 남자를 먹여야 한다는 차별도 없고. 할 수만 있으면 뭐든지 노력만 하면 할 수 있는 게 미국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탈북 여성 매리 씨는 여성이 당당하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고 공정하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미국과 북한의 큰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매리 씨] “여자의 권리가 여기 미국은 너무도 잘 돼서 내가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법에다 말할 수 있고 법이 내 손을 들어준다는 게 참 감사하거든요. 북한은 그런 게 없거든요. 모든 게 여자의 책임이에요. 법으로도, 가정적으로도, 사회에서도, 성추행당해도, 남편이 굶어 나가도 다 여자의 책임이거든요. 시스템이 다 그렇게 돼 있으니까”
한 탈북 여성들은 “여성 권리는 고사하고 북한에 전기가 미국처럼 24시간 계속 공급되기만 해도 북한 여성들은 크게 반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대북 선교단체인 갈렙선교회는 북한의 남녀평등권 법령 공포일 72주년을 하루를 앞둔 29일 북한 여성과 소녀들이 힘들게 강제 노역을 하는 최근의 영상을 비밀리에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녹취: 갈렙 선교회 공개 영상-선전대가 작업 독려하는 소리]
영상을 보면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남자에게도 버거울 정도로 보이는 돌이 든 큰 자루를 힘겹게 옮기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30일 “여성은 사회의 당당한 주인”,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 “나라의 꽃, 생활의 꽃, 가정의 꽃으로 복된 삶을 누리며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