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여학생들이 많이 하는 운동이 바로 축구입니다. 나이와 수준에 맞는 클럽 즉 축구단이 지역마다 다 있어서 어릴 때부터 축구단에 소속돼 축구를 배울 수 있죠. 그런데 축구단에서 활동하려면 장비도 사야 하고, 대회 참가비도 내야 하기 때문에 돈이 꽤 드는 게 사실입니다.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주의 한 비영리 단체는 축구가 하고 싶지만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 축구장에 데려가 줄 사람이 없는 저소득층 청소년, 이민자, 난민 출신 소녀들을 위한 축구단을 운영하고 있다는데요. ‘라이크어걸(Like a Girl)’ 로 불리는 이 특별한 축구단을 만나보죠.
“첫 번째 이야기, 이민자와 난민 출신 소녀들을 위한 축구단, ‘라이크어걸(Like a Girl)”
[현장음: 세인트폴 학생들 집]
미네소타주의 주도인 세인트폴의 조용한 주택가. 학생들이 하나 둘 차에 올라탑니다. 매일 오후 이렇게 학생들의 집을 찾아가 학생들을 데려오는 사람은 바로 ‘라이크어걸’ 축구단 창단인이자 감독인 카일 존슨 씨입니다.
[녹취: 카일 존슨] “축구단 활동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라이드, 그러니까 학생들을 운동장에 데려다 주고 또 마치면 집에 데려다주는 겁니다. 많은 학생이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서 축구를 못 하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직접 학생들을 태우러 다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 아이들은 축구를 할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이었던 존슨 씨는 몇 년 전 주 대항 경기 시상식에 참석했다가 ‘라이크어걸’ 축구단을 창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녹취: 카일 존슨] “주 대항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은 대부분 백인학생들이었습니다. 어떤 팀은 전원이 백인이었죠. 다른 인종의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게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있는데, 백인들로만 구성된 팀이 한 학교를 대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존슨 씨는 2년 전 ‘라이크어걸’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축구단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크어걸은 주로 이민자와 난민 출신 소녀들의 축구 실력 향상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카일 존슨] “미국의 축구 체계는 지역 축구단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축구단끼리 시합이 붙는 형식이죠. 그런데 축구단에서 활동하려면 돈이 적잖이 들어간다는 게 문제입니다. 주위에 보면 빈곤층이나 이민자 자녀들 가운데에도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그 친구들도 축구단에 가입하지 않는 한 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겁니다.”
라이크어걸에선 축구 외에 풋살이라고 하는 5인제 미니축구도 가르치는데요. 풋살은 너른 잔디 구장이 없어도 실내에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녹취: 카일 존슨] “풋살은 축구보다 규모가 작은 대신 아주 빠르게 움직입니다. 따라서 기술적인 면이나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많이 되죠. 축구나 풋살 경기를 하면서 학생들은 항상 이기는 건 아닙니다. 지기도 하죠. 하지만 사실 그런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더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시합에서 져보도록 강조합니다.”
라이크어걸 소속으로 뛰는 헤이블룻 포 양은 버마 카렌족 출신인 부모님이 태국 남민 캠프에 있을 때 태어난 난민 출신 소녀라고 했습니다.
[녹취: 헤이블룻 포]“ ‘라이크어걸’에서 뛰면서 축구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함께 뛰는 친구들을 보면 다 다른 난민캠프에서 오긴 했지만,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어요. 그런 상황이 서로의 우정도 더 돈독하게 해주고요. 감독님과의 관계도 더 끈끈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존슨 감독은 대학 축구 감독들을 초청했습니다. ‘라이크어걸’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량을 보고 학생들을 스카우트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녹취: 카일 존슨] “결과가 성공적이었습니다. 두 대학밖에 오진 않았지만, 3명의 학생이 축구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존슨 감독이 이렇게 학생들을 아끼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인 존슨 감독은 태어난 지 6주 만에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이 됐다는데요.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녹취: 카일 존슨] “저는 미국에 입양돼 좋은 가족을 만나고 또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아이들도 제가 누렸던 이런 기회를 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라이크어걸 축구단을 시작하게 됐고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여기서 축구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의 열정과 목표를 찾고 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배우길 원합니다. 라이크어걸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그거에요.”
라이크어걸 소속의 선수들은 바로 이런 목표를 위해 지금도 축구경기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과거 약방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약재상 박물관”
북한에선 동의학이라고 하는 한의학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여러 약초를 이용해 약을 짓고 처방하죠. 양의학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과거엔 한의학처럼 각종 약초 등 자연에서 나는 식물이 귀한 약재였습니다. 동네마다 약재상이 있어서 아픈 사람들이 약도 얻고 치료도 받았는데요.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약재상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장음: 스테이블 래드비터 약재상]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7세기 후반부터 1930년대까지, ‘스테이블 래드비터 약재상’은 지역 주민들에게 수많은 종류의 약을 제공했습니다. 가족 대대로 물려오던 약재상은 문을 닫았지만, 새 건물 주인은 약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전해 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스테이블 래드비터 약재상 박물관의 관리자 로런 글리슨 씨는 박물관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약병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로런 글리슨] “과거 사람들은 이 약재상에서 간단한 질병, 그러니까 두드러기나 피부염, 감기나 두통 같은 병을 치료하는 약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약재상 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약은 무려 수천 종류에 달합니다. 병에 담긴 간단한 물약부터 피를 뽑는 기구, 독성이 있는 약물이 병까지. 과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요. 현대의 약국이 그렇듯 과거에도 약재상에서 약만 파는 건 아니었다는 게 글리슨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로런 글리슨] “약재상엔 약 외에 여러 화학용품을 함께 팔았습니다. 페인트나 염색약, 향수도 직접 만들어 팔았죠. 뿐만 아니라 재봉틀과 펜, 면도기, 아기 젖병 등도 취급했었습니다.”
박물관 선반엔 유독 오래돼 보이는 약병들도 있는데요. 무려 1850년대부터 보관돼 오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일부 약병엔 약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어떤 것들을 여전히 약물이 안에 들어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약병 가운덴 구역질이 날 때 먹었던 계피나 양귀비꽃에서 추출한 아편도 있습니다.
[녹취: 로런 글리슨] “아편은 독감이나 이질에 효과가 좋은 진통제였습니다.”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면 동의학 병원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서랍들이 빼곡한데요. 이 서랍들 안에는 각종 약초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관광객 크리스틴 자파타 씨는 수많은 약재 가운데 마리화나 즉 대마초가 있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고 했습니다.
[녹취: 크리스틴 자파타] “약초나 식물을 기반으로 한 치료법이 요즘 다시 또 유행이잖아요. 동양의학 같은 전인치료도 인기를 끌고 있고요. 대마초가 전면 합법화된 캘리포니아에서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저로선, 이런 과거의 치료법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과거부터 내려오는 여러 치료제 가운덴 독성이 있다는 이유로 폐기되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약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민간요법으로 전해오는 치료법들의 도움을 아직도 받고 있는데요. 스테이블 래드비터 약재상 박물관은 과거 선조들의 치료법이 얼마나 지혜롭고 또 효과가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