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지난 11월 30일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향년 94세로 서거한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12월 5일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대성당에서 거행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연방 정부와 뉴욕 증권시장도 고인을 추모해 문을 닫았습니다.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은 조지 W.H.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오랜 헌신의 시작”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는 1924년 6월 12일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주 밀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프레스콧 부시는 투자은행가로 나중에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합니다.
[녹취: 전투 효과음]
부시 전 대통령은 태평양전쟁이 나자 해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해군에 들어간 부시 전 대통령은 조종사가 됐고, 뇌격기 조종사로 실전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그는 미 해군 뇌격기 조종사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녹취: 전투 효과음]
부시 전 대통령은 1944년 9월 작전 수행 도중 격추돼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표류하던 그는 근처에 있는 미국 잠수함에 구조됐습니다.
“평생의 반려, 바버라 부시 여사”
부시 전 대통령은 1945년 평생의 반려와 결혼합니다. 배우자는 1941년 성탄절 댄스파티에서 만난 바버라 피어스였습니다.
바버라 피어스는 결혼 당시 20세였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73년을 함께 하며 여섯 자녀를 낳았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한 다음 해인 1946년, 첫 아이인 조지 W. 부시가 태어납니다.
1948년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한 부시 전 대통령은 석유회사에 일자리를 얻어 텍사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연방 상원의원이 된 1950년대 초에 직접 석유회사를 세웠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다양한 정치 경력”
사업가로 성공한 부시 전 대통령은 관심을 정치로 돌립니다. 1962년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주 해리스카운티 공화당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녹취: 1964년 정치광고]
부시 전 대통령은 이어 1964년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패합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2년 뒤에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해 승리했습니다.
[녹취: 1970년 부시 연설]
1970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부시 하원의원에게 다시 상원의원에 출마하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부시 의원은 두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닉슨 대통령은 그를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합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그 후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의장이 되면서 공화당 안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녹취: 닉슨 대통령 사임 연설]
1974년 당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자 부시 전 대통령은 전국을 돌면서 공화당 지지자들을 위로했습니다. 한편 닉슨 대통령 후임이었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을 중국 주재 미국 이익대표부 대표로 임명합니다.
중국에 약 1년 정도 머문 부시 전 대통령은 1976년 미 중앙정보국(CIA) 수장이 됐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을 임명한 포드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한 뒤 물러나는 1977년에 CIA 국장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정치 경력의 전기- 백악관행”
행정부 내 고위 관직을 거친 부시 전 대통령은 1980년 드디어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습니다.
[녹취: 부시 전 대통령]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부시 전 대통령은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승리하는 등 초반에 기세를 올렸지만, 결국 로널드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패했습니다. 하지만, 레이건 후보는 경쟁자였던 부시 후보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녹취: 레이건 대통령 취임 선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이해 대선에서 현역 대통령인 지미 카터 대통령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따라 부시 전 대통령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제41대 미국 대통령-조지 H.W. 부시”
1987년 당시 부시 부통령은 이듬해 치르는 대선에 출마한다고 발표합니다.
[녹취: 1988년 미국 대선 후보 토론]
198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당시 부시 부통령은 본선에서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꺾고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1989년 1월 미국의 제41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1836년 당시 마틴 밴 뷰런 부통령 이후 현직 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급박한 국제정세 속에 빛난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했던 기간은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때였습니다.
[녹취: 소련 붕괴 관련 VOA 뉴스]
1991년 소련이 무너지는 등 동서냉전 체제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지도력을 발휘해 국제정세를 안정시켰습니다.
[녹취: 걸프 전쟁 관련 뉴스]
부시 전 대통령의 지도력은 또 걸프 전쟁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199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가 이웃 나라인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점령합니다. 그러자 부시 전 대통령은 동맹국들을 규합해 국제연합군을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중심이 된 국제연합군은 이듬해인 1991년 단 100시간 동안 진행된 지상 작전으로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완전하게 몰아냈습니다.
“단임으로 끝난 부시 대통령 체제”
냉전 종식, 그리고 걸프전쟁 승리로 부시 전 대통령의 재선은 떼놓은 당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미국 내 상황이 발목을 잡습니다.
[녹취: 1992년 대선 토론회]
부시 행정부가 국제 문제에서 큰 업적을 내고 있을 당시 미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침체 국면에 접어듭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이 취임 전에 내세웠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선거에 나쁜 영향을 주었습니다.
[녹취: 부시 전 대통령 1988년 전당대회 연설]
부시 전 대통령은 1988년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대통령이 된 뒤에 세금을 올려서 유권자들의 믿음을 잃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내세운 젊은 후보인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바로 경제 문제를 부각했습니다. 거기에 제3당 후보로 출마한 로스 패로 후보가 보수표를 잠식해 결국 부시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합니다.
“미국 역사에 남을 정치 가문 부시 집안”
부시 전 대통령은 단임에 머물렀지만, 그의 정치적 유산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장남인 조지 W. 부시 당시 텍사스 주지사가 승리한 것입니다. 부시 주지사는 이듬해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아버지와는 달리 재선에 성공해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대통령이 된 경우는 단 두 번입니다.
장남 부시 대통령 외에 둘째 아들인 젭 부시도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냈고, 지난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부시 전 대통령 집안은 케네디 집안에 이어 미국의 정치 명문 집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지난 11월 30일에 서거한 조지 H.W.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