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이 웜비어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북한 당국에 5억 달러의 배상금 판결을 내리면서, 당시 판결과 함께 공개된 판사의 의견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질 외교’ 행태 등을 지적하면서 ‘펜치’와 ‘전기충격’을 이용한 고문을 가했다는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웜비어 측에 사실상 승리를 안겨준 이번 판결은 전문가들의 진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한 베럴 하월 판사는 24일 공개한 ‘의견서(memorandum opinion)’에 이번 판결을 내리게 된 이유를 담으면서 웜비어 측이 제출한 서면 진술과 지난 19일 개최된 ‘증거청문’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여러 차례 인용했습니다.
특히 웜비어의 죽음이 북한의 ‘고문’ 때문이라는 웜비어 측의 주장을 사실상 수긍하는 한편 “전문가(주치의)가 내린 결론은 북한이 고의적으로 웜비어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데 있어 필수적인 증거 이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웜비어의 주치의였던 대니얼 캔터 박사는 지난 10월 재판부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를 통해 ‘웜비어의 사인은 뇌 혈액 공급이 5~20분간 중단되거나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면서, 북한 측이 주장했던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균’ 증상이 웜비어에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아울러 북한에서 촬영된 뇌 촬영 사진을 근거로 웜비어의 뇌 손상 시점을 2016년4월로부터 수주 전으로 예상해, 억류 기간의 상당 부분을 병상에서 보냈다는 점을 암시했었습니다.
따라서 하월 판사는 “북한이 웜비어가 의료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 그를 집으로 더 일찍 보내는 대신 1년 넘게 심각하게 위태로운 상태로 계속 억류했다”며 “이는 전체주의 국가가 웜비어를 잔인하게 다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웜비어의 발에 큰 상처가 있다는 점과 치아들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주치의의 진술서를 인용하면서 “웜비어의 발에 전기충격이 가해지거나, 치아 위치를 바꾸기 위해 펜치를 사용했다는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월 판사는 북한 사법체계의 ‘위법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지난 19일 증거청문에 출석한 이성윤 미 터프츠대 교수와 데이비드 호크 미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의 증언을 인용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16년 3월 판결을 통해 웜비어에게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에 독립된 사법부가 없고, 웜비어의 자백을 조작했으며, ‘보여주기식 재판’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웜비어에게 내려진 판결이 적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월 판사는 이 같은 내용을 적시하면서 “만약 북한의 사법체계가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웜비어에게 내려진 판결은 15년의 노동교화형이었지, 죽음은 아니었다”며, 웜비어의 죽음의 원인이 북한에게 있다는 점을 명시했습니다.
웜비어의 자산 가치에 대한 배상금액을 결정할 때도 전문가의 산술법이 이용됐습니다.
미국의 올드 도미니언 대학의 제임스 코치 교수는 재판부에 제출된 보고서를 통해 웜비어가 생존한 상황을 가정해 그의 자산 규모를 3가지 경우의 수로 예측했습니다.
코치 교수는 웜비어가 버지니아 대학에서 좋은 학업성적을 거둔 사실과,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 재학한 점, 뉴욕의 투자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한 사실을 근거로 했다고 보고서에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웜비어가 뉴욕 금융가에 진출하지 못했을 경우와 진출했지만 큰 성과 없는 직장인으로 남을 경우, 또 금융가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 20년 뒤 관리자 자리에 오를 경우의 수가 제시됐습니다.
이를 통해 웜비어가 가장 많은 돈을 벌 때의 금액을 603만8천308달러로 추산했는데, 하월 판사는 이 같은 산출법을 최종 인정해 최대치를 웜비어의 자산 가치로 결정했습니다.
하월 판사의 의견서에는 웜비어 가족들의 겪은 고통도 자세히 묘사돼 있습니다.
특히 웜비어가 신시네티 공항에 도착했을 당시 부모인 신디와 프레드 웜비어 씨와 동생 2명은 비행기에 올랐는데, 이 때 사람소리 같지 않은 큰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의식불명 상태의 웜비어가 내는 소리로, 당시 웜비어의 상태는 끔찍했고,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고 가족들은 밝혔습니다.
아울러 당시 웜비어는 심각한 뇌 손상과 함께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태여서 주변 상황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고, 심지어 막내 여동생은 소리를 치며 비행기 밖으로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또 웜비어의 엄마인 신디 씨도 실신 직전 상태에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증언은 하월 판사가 부모의 피해 부분을 입증하는 데 인용됐습니다.
하월 판사는 “북한의 행동으로 인한 웜비어의 억류를 둘러싼 상황은 특별히 부모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웜비어가 억류된 동안, 이 전체주의 국가는 그의 상태에 대해 어떤 사실도 알려지도록 하지 않았고, 부모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르는 채 계속해서 걱정해야만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웜비어의 가족에게 높은 금액의 배상액을 책정한 데 대해서도 “고문이나 인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가족들은 일반적으로 단일 공격으로 인한 피해 가족들보다 더 높은 배상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월 판사는 24일 발표한 최종 판결문을 통해 북한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5억113만4천638달러를 북한이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4월 최초 소송을 제기한 웜비어 측은 북한의 무대응을 근거로 피고를 배제한 채 진행되는 ‘궐석 판결’을 요청해 불과 8개월만에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