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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전문가들 “한-일 관계 최악...상호 국익에 초점 맞춰야”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두 나라 전문가들은 양국 정부와 언론 모두 이견을 정치화하거나 과장하지 말고 국익에 초점을 맞출 것을 권고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과거사와 독도(일본명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 등으로 지난 수 십 년 간 관계에 많은 굴곡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해상 레이더 공방 등 크고 작은 논란이 더해지면서 두 나라 정부는 물론 국민감정 모두 최악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주 보도에서, 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비호감이 61%로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82%인 북한, 76%를 보인 중국보다는 낮지만, 일본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러시아(60%)보다 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 겁니다.

한-일 해상 레이다 갈등에 관한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정부의 대응에 85%가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시즈오카현립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오쿠조노 히데키 준교수는 양국 정부가 소통하기 힘들 정도로 신뢰가 악화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오쿠조노 교수] “한-일 상호 간에 신뢰감이 이제 완전히 결여돼 있는 상태가 돼서 예전 같으면 문제가 생겨도 물밑에서 서로 협의해서 관리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수면 아래서 문제를 서로 소통하며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없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권당인 자민당의 강경파뿐 아니라 야당과 국민들 사이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한-일 관계를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의심하는 반한 감정이 퍼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국 내 반일 감정은 일본 내 반한 감정보다 더 강한 분위기입니다.

최근 한국 내 한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강제징용과 레이다 사안에 대해 일본에 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응답 45.6%를 포함해 대응 지지 응답이 83.2%에 달했습니다.

라종일 전 주일 한국대사는 실무선에서 해결할 문제들이 두 나라 모두 고위층부터 정치적으로 나오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라종일 전 대사] “맨 고위층에서부터 얘기가 나오지 말고 외교 문제는 외교 문제, 군사적 문제는 군사적으로 처리했어야 합니다. 일단 그런 실무자들에게 맡겨서 처리하도록. 외교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국내정치적 문제로, 사법적 문제로까지 가 버리는 게 유감입니다.”

신각수 전 주일 한국대사는 이 사안이 지난 2012년부터 점진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신각수 전 대사] “2012년부터 악화된 한-일 관계가 2015년 말 위안부 합의가 되면서 반짝 좋아지려다 2016년 말에 부산 위안부상 세우면서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장기화되다 보니 국민감정에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한국은 일본이 없고, 일본도 한국이 없어요. 상호 경시와 무시! 이러다 보니 한-일 관계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양쪽에 모두 없어요.”

이런 내리막길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대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고, 한국 정부가 이를 존중한다고 밝힌 뒤 일본이 반발하면서 더 악화됐습니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05년 ‘징용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과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다 뒤집고 있다며, 외교 합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삼권분립된 나라로 정부는 사법부 판단에 관여할 수 없고 사법부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의 소장(직무대리)을 맡고 있는 남기정 교수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남기정 교수] “한국이 예컨대 2015년 합의를 파기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조정하거나 다시 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좀 과도한 반응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면 그것을 존중하는 게 행정부의 입장일 거고 그것을 전제로 해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남아 있어서 그 숙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부분은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 보지만, 사법부가 내린 판단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며 내린 결정을 문제 삼는 것은 오히려 그걸 문제 삼는 쪽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베 정부가 국제법을 주장하려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존중해 2차 세계대전 전범이 합사된 신사참배부터 자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제법 전문가들은 영사 관계와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에 따라 국가 간 조약은 국내법 등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 사안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면 한국에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안을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면 두 나라 모두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회복 불능 사태로 악화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합니다.

문제는 두 나라가 이런 최악의 관계 악화로 동북아와 국제사회에서 주도할 수 있는 여러 국익과 협력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신각수 전 대사는 두 나라의 관계 악화로 경제와 안보, 대북 사안에 대해 잃는 게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신각수 전 대사] “우리가 수출하는 것의 중간재 만드는 것 중 상당 부분 부품 소재 장치는 일본에서 가져옵니다. 이게 끊어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일본도 한국도 손해죠. 그렇지만 피해는 (일본이) 우리보다 적을 거예요.”

게다가 한-일 간 협력을 통해 하지 못 하는 기회비용,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한국 가입에 제동이 걸릴 수 있고, 미국 우선주의로 대북 협상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안전을 확약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신각수 전 대사] “한-일 간의 입장이 미국의 한국·일본 입장보다 가까워요. 왜 그러냐 하면 미국 입장에서 ICBM 동결만 하면 되죠. 동맹국의 안전을 위해 CVID, FFVD로 하는 것이지 스몰 딜로 끝날 가능성도 크잖아요. 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만 낙동강 오리 알이 되는 거예요.”

일본의 오쿠조노 교수도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할 분야가 산더미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해상 레이더 문제도 과거 같으면 미국이 적극 중재해 해결했겠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더욱 협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녹취: 오쿠조노 교수] “미국이 옛날의 미국 같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이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한-일 양국의 양해를 얻어 미국이 한다기보다 그야말로 미국 제일주의로 움직이는 나라가 됐기 때문에 한-일 양국의 국익과 위반되는 행동을 미국이 취할 수 있어요. 미-중 무역 분쟁도 마찬가지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 순수하게 동맹국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볼 때 저는 한-일이 미국을 설득한다는 면에서 안전보장과 견제 문제도 그렇고 미국이 아시아에 계속 관심을 유지하도록 우리가 협력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봐야죠.”

한국이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법을 쉽게 무시하고 이웃나라를 겁박하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오쿠조노 교수는 두 나라 정부가 관계 악화를 조속히 막아야 한다며, 과거 강제징용에 관여했던 일본 민간기업들과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혜택을 받은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이 민간재단을 만들어 이 사안을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남기정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합의에 대해 “새로운 버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남기정 교수] “일본이 만일에 그게(과거사)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일본이 한-일 간에 공유할 수 있는 문건으로 정리해 발표하고, 그것에 따른 일본의 책임, 즉 법적 배상이란 것은 실질적으로 일본이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조치로서 배상이 이뤄졌다고 간주한다면 양쪽에서 요구하는 게 깨끗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법리적으로는요.”

신각수 전 대사는 서로가 자국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 자세히 점검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각수 전 대사] “한국이나 일본이 서로 무시하고 경시하고 상호 이익을 패스하고 있습니다. 너무 좋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니까 감정으로 자꾸 문제를 보게 되고 냉철하게 왜 상대가 자국에게 중요한 것인가? 이점에 대해 별로 얘기를 안 합니다. 정부도 언론도. 이제 서로가 얼마나 자국에게 중요한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얘기할 때가 됐습니다.”

라종일 전 대사는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의 의원들이 열린 마음으로 더 노력하는 한편 일본도 합의 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과거의 행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중의원의 나카가와 마사하루 의원은 2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두 나라 정부가 먼저 이견이나 갈등을 과장하거나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나카가와 의원] “We should not exaggerate or politicize the difference or conflicts

나카가와 의원은 양국이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 인권, 유교 문화 등 공유하는 게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과거의 과오를 절대 부인하지 말아야 하며 한국인들도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며 나간다면 미래 한-일 관계는 훨씬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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