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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 국방백서 ‘북한 적’ 삭제 논란


지난 2017년 판문점에서 북한 경비병이 남측을 살피고 있다.
지난 2017년 판문점에서 북한 경비병이 남측을 살피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을 피하면서 자체 국방력을 증강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 따른 적절한 조치란 평가와, 안보 사안에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북한을 적대 관계에서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려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국방 분야에서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최근 2년마다 발간하는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표현을 8년 만에 삭제했습니다.

대신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지난 2010년 북한 정권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했었습니다.

또 지난주 국방중기계획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한 핵심 전략인 ‘한국형 3축 체계’란 용어도 없애고 ‘핵·WMD(대량살상무기) 대응체계’란 말을 쓰기로 했습니다.

국방부는 ‘적’ 표현은 “북한의 위협뿐만 아니라 점증하는 잠재적 위협과 초국가적·비군사적 위협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 이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등 남북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이런 조치들을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북한 만이 적이 아니고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간주한다. 3축 체계도 킬 체인 대량응징 보복이니 이런 표현이 있는데 이것도 포괄적으로 핵·WMD 대응 이런 식으로 했는데 아마 남북 간의 협상, 정상회담이라든지, 9·19 군사 합의라든지 이런 현재 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해 보자는 그런 뜻이 좀 더 많이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 센터장은 용어와 표현은 변경됐지만, 무기체계와 대비태세 등 원칙이 바뀐 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국방백서가 지적했듯이 북한이 핵 역량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고 특수부대도 늘리며 재래식 전력을 계속 전진배치 하는데, 한국만 표현을 바꾸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우리 국민이나 장병들에게 평화가 오지 않았는데 마치 평화가 온 것 같이 남북 간의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았는데 해소된 것 같이 착각을 하고 느슨해지고 해이해지고 그것이 한-미 동맹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죠.”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반 발짝 너무 빨리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조금 빨랐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비핵화라든가 이런 부분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게 안전합니다. 특히 다른 사이드가 아니라 국방 분야는 확실하게 위협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하면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최후의 보루인데 약간 반 발짝 정도 먼저 나갔다. 정치적 고려를 통해서. 반 발짝 뒤에 따라가야 하는 조직이 반 발짝 앞서 나갔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적이 아니란 의미가 아니라 적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더 자세히 설명한 게 이번 국방백서의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단어가 빠졌다고 해서 북한이 적이 아니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북한이 적이란 것을 좀 더 구체화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적이란 단어를 뺀 대신 ICBM, 대량살상무기가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고 재래식 무장력에 대한 감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도 선별적으로 군사력이 강화, 특수부대, 전투를 좀 더 원활하게 하는 여단의 규모가 더 많아졌다, 이런 것들을 좀 더 구체화함으로 인해 내용상으로 보면 북한의 위협을 실질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적이란 단어가 단순히 빠졌다고 해서 북한을 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확대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국책기관의 일부 전문가도 북한은 대결과 도발을 일으킨 대상이면서 동시에 통일을 해야 할 협력적 동반자이기 때문에 ‘적’으로만 일방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등 국제사회 역시 국방·정보 보고서에서 ‘적’이란 의미의 ‘Enemy’란 용어보다 적대적 혹은 대립 관계란 의미의 ‘adversary’, 위협이란 의미의 ‘threat’ 또는 반대자란 뜻의 ‘opponent’란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국방전문가인 미국의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과거 ‘VOA’에, 미국은 상대를 자극해 상처를 주거나 화나게 하는 ‘적’이란 표현보다 부드럽고 완화된 표현을 선호한다고 설명했었습니다.

역사학자인 마이클 이그나티어프 전 캐나다 자유당 대표는 과거 ‘뉴욕타임스’ 신문 기고에서 적과 다른 용어의 개념 차이를 자세히 설명했었습니다. 대립관계란 의미의 Adversary는 이기길 원하지만, 신뢰가 가능하고 타협할 수 있으며, 내일에 동맹도 될 수 있는 대상인 반면, ‘적’이란 의미의 Enemy는 파괴 대상으로 신뢰가 불가능하고 규범대로 행하지 않아 타협할 상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양면적 대상이기 때문에 ‘적’이란 표현을 삭제한 게 더 타당성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한반도가 여전히 정전상황으로 대치 중이고 수 천 건의 정전협정 위반과 도발을 북한 정권이 일방적으로 가한 상황에서 국제 기준을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란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의 새 국방백서는 또 북한이 화성-13형과 그 개량형 미사일의 존재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등 모두 14종의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했거나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재래식 전력을 선별적으로 증강하고 특수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등 군비 증강 기조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백서는 북한 병력이 한국의 59만 9천 명보다 2 배 이상 많은 128만 명이며, 육군 전력의 70%를 휴전선에 전진배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앞서 지난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서 올해부터 2023년까지 국방비를 연평균 7.5%씩 늘려 5년 동안 270조 7천억원, 미화로 2천 40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국방예산 증액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시 문성묵 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지금 우리 군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또 변화하는 안보 상황, 우리 병력이 줄잖아요. 근데 북한의 병력은 늘고 있고. 또 우리가 언제까지 한-미 동맹을 의존할 수 없잖아요. 동맹을 강화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스스로 갖춰야 할 역량을 갖춰 나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국방백서는 또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 및 군비통제 추진으로 평화정착 토대 구축’이란 부분을 새롭게 추가해 북한과 군사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김동엽 교수는 남북 간 경쟁에서 이미 한국은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바탕으로 먼저 선의를 보여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상대방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임으로 인해 상대방이 우리를 따라 배울 수 있는 이런 어떤 자신감과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해요. 너는 왜 안 하는데 우리만…그렇게 하면 북한과 우리가 똑같잖아요. 저는 북한과 우리가 같지 않다고 봅니다. 훨씬 우리가 앞서있고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양보라는 개념보다 우리가 좋은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해서 북한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노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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