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정보 당국 수사관들과 검사들을 고소했습니다.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새 진상조사 발표에 따라 관련자들을 철저히 처벌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인권의 날 기념식.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를 담은 세계인권선언을 낭독하는 참석자들 중에 유우성 씨가 입을 엽니다.
[녹취: 유우성 씨]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기까지 천 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10조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정에서 공정하고 공개적인 심문을 받을 권리가 있다.”
과거 한국 공안 당국의 간첩조작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북한 화교 출신 유우성 씨가 최근 증거 조작에 관여한 여러 가해자를 고소했습니다.
대상은 국가정보원 수사관 4명과 수사·공판을 맡았던 검사 2명, 허위 증언을 한 탈북민 1명입니다.
유 씨는 15일 ‘VOA’에 가해자를 철저히 처벌해 다시는 무고한 사람들이 조작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소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우성 씨] “가해자를 처벌하고 간첩조작 사건이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발하고 제도 마련을 촉구하게 됐습니다.”
이번 고소는 지난주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발표가 동력이 됐습니다. 유 씨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장경욱 변호사입니다.
[녹취: 장경욱 변호사]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많은 것을 밝혔어요. 고문과 가혹 행위를 한 국정원 조사관, 또 증거 은닉, (이를 방치한) 검사들…과거사위 조사가 탄탄해서 (검찰총장 사과가 아니라) 수사를 하란 얘깁니다.”
지난 2017년 12월에 설립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과거 검찰의 인권 침해나 권한 남용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조사해 진상을 밝히고 재발 방지와 피해 회복을 위해 법무부 장관에게 권고하는 독립기구입니다.
위원회는 지난 8일 검찰이 유 씨 사건에 대해 국정원의 인권 침해와 증거 조작을 방치했고 보복성 기소까지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검찰총장이 사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북한 화교 출신인 유우성 씨는 지난 2004년 탈북민으로 위장해 한국에 입국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 지난 201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습니다.
당시 국정원과 검찰은 유 씨가 여동생 유가려 씨를 통해 한국 내 탈북민들의 정보를 북한 보위부에 넘겨줬고, 유 씨도 한국 국적 취득 후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간첩 행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제출한 유 씨의 북-중 국경 출입기록이 허위로 밝혀지면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유 씨는 당시 증거 조작이 밝혀졌을 때 검찰이 조사를 제대로 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이 밝혀졌을 때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관들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고 간단한 징계로 끝났고 국정원 수사관들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국정원이 직원 한 명에게 모든 혐의를 짊어지게 한 뒤 나머지 관계자들은 처벌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당시 증거 조작 혐의로 국정원의 김모 과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고, 나머지 관계자 여러 명에게 벌금형 등을 선고했습니다.
한국 법원은 또 지난해 말 유 씨의 여동생 변호인 접견을 막은 혐의로 국정원 간부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는 간첩 사건의 경우 검증 방법이 부족해 공안 당국이 조작하기 쉬워 수많은 위법 행위들이 장기간 지속돼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기회에 전모를 밝히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경욱 변호사] “북쪽에 간첩 문제 등에 검증할 눈이 없고요. 검증할 눈이 없으니까 쉽게 조작해도 안 들키는 거잖아요. 그러니 전모를 밝혀야죠. 전모를 밝혀야 이런 일이 앞으로 발생하지 않고요.”
공안 문제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안보 당국도 정신을 차리고 어떤 위법 행위나 조작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국자들이 다양한 처벌을 받았고 검찰과 국정원이 자체 징계를 내렸는데도 과거 간첩 적발 사건이 모두 조작인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동열 원장] “간첩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매우 어려운 것은 북한이 대남 간첩 공작을 할 때 매우 정교한 방법으로 은밀하게 추진한다는 겁니다. 간첩을 잡아 놓고 북한 정부에 간첩 맞냐고 영사 조회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잖아요. 이게 간첩 사건의 특수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일을 하다 보니 사법부도 간첩 사건에 매우 엄격합니다. 따라서 모든 간첩 사건이 조작이라는 민변이나 일부의 주장은 잘못된 겁니다.”
유우성 씨에 대해 도의적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가 중국 국적의 화교이면서도 탈북민이라고 속여 한국에 입국해 무료로 대학을 다니고 공무원이 되는 등 여러 혜택을 받고 북한까지 다시 방문해 빌미를 제공했으면서도 정의를 외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유 씨의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정광일 ‘노 체인’ 대표는 자신도 신분을 속이고 환치기를 하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많이 했다면 자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광일 대표] “자기가 마음대로 북한을 가고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자기도 잘못한 게 있으면 반성해야죠. 불법적 행위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국적도 불법으로 취득했고 불법적 방법으로 국가지원금을 받아 연세대를 나왔고 심지어 위장난민으로 영국에 들어갔다 다시 들어왔고.”
실제로 유 씨는 여권법과 북한이탈주민보호법, 사기 혐의 등으로 유죄를 인정받아 국적이 박탈됐습니다.
유동열 원장은 유우성 씨가 범법자이기 때문에 정부가 추방 등 법적 조치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유동열 원장] “국내법에 의해서 연세대는 학사 학위 준 것을 취소하고 정부는 국외추방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은 혜택을 정부가 환수해야 하는데 이런 조치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정부의 잘못입니다. 자신이 간첩으로 몰린 것은 당연히 관련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하고 본인에게도 똑같은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합니다.”
유우성 씨는 이에 대해 ‘VOA’에, “이미 그런 혐의에 대해 재판도 받고 처벌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비난에 대해 할 말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자신같은 피해자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유우성 씨] “유우성이란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부가 간첩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조작하는 것은 사법기관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든요. 큰 틀에서 잘못된 것은 잘못됐고 잘 한 것은 잘했다고 하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