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는 2월 27일과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엽니다. 이를 계기로 미-북 정상이 다시 만나는 베트남에 새삼 눈길이 쏠리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에는 ‘미국과 베트남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미-베트남 관계의 시초: 인도차이나 문제”
1950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부분적으로 독립한 베트남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1954년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완전하게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제네바 평화협정에서 따라 남북으로 분단됐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 1955년 남베트남에는 미국 후원하에 응오 딘 지엠(Ngo Dinh Diem)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베트남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미국은 프랑스를 대신해 지엠 정권에 대폭적인 군사지원을 단행했습니다.
“베트남 전쟁과 미-베트남 관계”
미국은 1964년 8월에 발생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습니다. 1965년 2월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북베트남 공습을 승인했고, 이해 3월에는 미 해병대의 다낭 상륙을 시작으로 미군 베트남파병이 본격화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장기화했고 그러자 미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하면서 ‘베트남으로부터 명예로운 철수’를 내세운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가 1968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후 1973년 1월 파리 평화협정 체결과 동시에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렇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물러나자 결국 1975년 4월 베트남은 공산화됐고, 미국과 베트남 관계는 단절됐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후 대베트남 경제제재를 단행했습니다.
“냉전 이후 두 나라 관계의 복원”
완전하게 단절됐던 두 나라 관계는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베트남이 1988년 9월부터 미국이 베트남에서 미군 포로와 실종자 유해를 수색하는 것을 허용한 것입니다.
이후 미국 정부는 1991년 유해 수색 작업을 위해 냉전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 하노이에 현장 사무소를 설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91년 10월 캄보디아 평화협정이 체결돼 베트남의 캄보디아 개입이 공식적으로 끝나자 당시 조지 H.W. 부시 미국 행정부는 미군 실종자 문제에 베트남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2년 안에 외교 관계를 재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인의 베트남 여행 제한을 일부 해제해 단체여행과 사업목적 여행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1993년에 출범한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도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점차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994년 2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대베트남 경제제재를 전면 해제했고, 마침내 미국은 1995년 8월 정식으로 베트남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했습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000년 11월 베트남을 방문해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구축하기로 약속했습니다.
2005년 6월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가 베트남전 이후 베트남 정상급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찾아 양국 정상 간 공동성명을 통해 ‘우호적이고 건설적이며 다차원적인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을 선언했습니다.
“미-베트남 경제협력 강화”
미국과 베트남은 1995년 국교를 정상화한 뒤 이듬해부터 무역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두 나라는 이후 5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2000년 7월 무역협정에 합의했고, 이 협정은 이듬해 발효됐습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은 베트남 상품에 대한 관세장벽을 없앴고, 베트남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했습니다.
이후 바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5년 미국과 베트남을 포함해 12개 나라가 참여하는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을 타결했습니다. 이어 들어선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TPP에서 탈퇴하긴 했지만, 이 협정에 따라 베트남 정부는 지식재산권 보호 등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국교 정상화 이후 두 나라 무역은 꾸준히 늘었습니다. 1995년 4억5천만 달러 수준이었던 두 나라 교역액은 2017년에는 540억 달러가 됐습니다.
“확대되는 양국 협력”
미국과 베트남 사이 협력 관계는 경제 분야를 넘어 안보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2010년 두 나라는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11년 7월 미 해군 함정 3척이 베트남 다낭에 입항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3년 7월 두 나라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6년 5월 당시 바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해 무기 금수 조치를 전면 해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고엽제 피해자 보상, 지뢰·불발탄 제거 지원 등을 통한 과거사 극복, 그리고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통한 베트남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는 베트남 인권 문제 등 두 나라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현안이 있지만, 두 나라 사이의 협력 관계는 더 밀접해지리라 전망합니다. 현재 베트남은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인권문제제기에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뉴스 속 인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최근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도전한다고 선언한 버니 샌더스 미 연방 상원의원입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올해 77세입니다. 그는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했고,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1990년 버몬트주에서 무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07년부터 역시 무소속으로 이 지역 연방 상원의원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샌더스 의원은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설명합니다. 이는 부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를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또 대외정책에서는 외교 우선주의자로 지난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2016년 무소속 신분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TV 토론을 통해 전국적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경선에서 졌고, 샌더스 의원을 누른 클린턴 전 장관도 대선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최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지난 2016년에 시작한 정치 혁명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지난 대선 때처럼 국가 주도 단일 의료보험 도입,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 그리고 대학 무상 교육 등 진보적인 정책을 들고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일 샌더스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최고령 대통령 당선인이 됩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미국과 베트남 관계’, 그리고 뉴스 속 인물로는 최근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미 연방 상원의원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