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실시된 북한의 농업 개혁 조치가 식량안보 개선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가 비핵화 결단과 외부의 지원·경협, 개혁 조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은행은 최근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1천 349 달러로, 처음으로 3만 달러 선을 돌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독일, 일본 등 6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량농업기구(FAO) 등 유엔 기구들은 이달 초 공동 보고서에서 북한은 인구의 43%에 달하는 1천 100만 명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10년 전보다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는 지난달 유엔에 긴급 식량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은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455만t으로 전년보다 16만t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유엔 기구들과 한국 기관들은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의 내년 곡물 생산량은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며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강조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도 이런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김 위원장이 야심 차게 추진한 여러 농업 개혁 조치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포전담당책임제, 즉 개인에 대한 생산 인센티브와 분조와 개인에 대한 경영관리 권한 등을 더 부여한 제도를 추진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곡물 생산은 오히려 지난 2년 간 감소 추세에 있고 별다른 변화 조짐도 없다는 분석입니다.
최근 관련 보고서를 발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영훈 선임연구위원은 두 가지 이유를 지적합니다.
[녹취: 김영훈 위원] “자본! 물적 토대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란 개혁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게 원인의 하나고요.”
또 하나는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할 군대와 공기관 등 특수계층이 있기 때문에 약속한 인센티브를 농민에게 더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겁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도 물자 공급의 부재와 정부의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북한 나름대로 포전담당제 등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가 발휘되려면 물자 공급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가능하고 분배 제도도 북한이 제도 변화를 통해 정부가 약속한 분배 제대로 잘 지켜지면 괜찮은데 그런 것들이 확실하게 정착돼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북한 농업과학원 출신의 이민복 북한동포직접동기운동 대표는, 최근 탈북한 농민들로부터 북한 당국이 생산 목표량만 높게 잡고 분배는 제대로 안 해 농민들이 정부의 새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대표] “사람들의 신뢰가 없고요. 단위를 높이 책정하니까. 게다가 비료도 없고 해봤자 단위는 높여놨지. 그러니까 농민들이 뭐 신경 쓸 거 있냐…”
전문가들은 또 북한의 곡물 수확량 감소에는 화학비료 공급량 감소, 재배 면적 감소, 지난해는 특히 폭염과 가뭄 등 자연재해와 용수 부족, 대북 제재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같은 자연환경 속에서 한국의 수확량은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을 볼 때 제도 개선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농업생산기반 개선과 필수농자재 공급이 수반돼야 한다고 권태진 원장은 말합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생산 기반이 한국은 잘 갖춰져 있지만, 북한은 기반 투자가 약해 한국과 전혀 상황이 다릅니다. 이런 것들이 사실 제도의 변화 효과가 나타나려면 제도만 갖고 안되는 거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업기반이 갖춰져야 하고 물자 공급이 돼야 하고 제도가 바뀌었으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데 아직은 미비하다. 제도만 바꿨지 제도가 잘 작동될 수 있는 환경은 잘 안 갖춰져 있다고 보는 거죠.”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안에 발전하기 힘든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김영훈 위원입니다.
[녹취: 김영훈 위원] “북한 경제당국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겁니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제도를 개혁해도 물적 토대, 물질 자본이 크게 뒷받침되거나 아니면 일시적으로 3~5년 간 생활필수품과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로 외부에서 조달되지 않으면 지금같은 악순환이 계속되겠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에 곡물 생산량이 줄어 인센티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간단체인 현대경제연구원의 이부형 이사입니다.
[녹취: 이부형 이사] “제재 영향이 크다고 봐야죠. 농약이라든지 비료, 종자가 필요하잖아요. 필요한 것들이 조달이 돼야 하는데 외부적으로 전혀 조달이 안 되는 상황. 농기계도 마찬가지죠. 그러다 보니 농업 쪽에서 제도적 인센티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농업 혁신이 좀 지연되지 않았나 이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
게다가 인도적 식량 지원도 없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 분배할 몫이 줄어 제도 개혁이 작동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이부형 이사는 제재가 해제되면 충분히 식량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인다며, 비료와 농약은 물론 외부의 지원으로 농업생산기반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부형 이사] “제재 국면이 해제되면 인도적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농업 관련, 식량 조달 관련된 북한 내부로의 지원이 많이 이뤄질 것 같고. 식량 생산 자체는 눈에 띄게 증가할 수 있죠. 거기에 인센티브 기제까지 제대로 작동하면 식량 관련 해서는 시장의 기능이 작동하게 되는, 그러면서 근대화에 다가갈 수 있죠.”
권태진 원장은 그러나 제재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제재가 풀린다 한들 갑자기 좋아지겠는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얼만큼 투입할 것인가잖아요. 그런데 북한 스스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제재를 해제한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농업 자체가 하나의 종합과학인데, 모든 게 잘 갖춰져야 가능하죠.”
권 원장은 제재 해제에 앞서 북한 정부가 우선 새 제도를 잘 지키고 농민들이 제대로 된 인센티브를 받도록 보장해야 하며 기존의 주체농업도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민복 대표도 제재 해제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오히려 제재가 북한 정부의 개혁을 추동하는 작용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민복 대표] “역설적으로 그렇게 압박을 받으면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혁적으로 더 나갈 수밖에 없죠. 통제를 못 해요. 예를 들어 제재를 가하니까 북한 주민들이 다 어려워지나? 그렇지 않아요 어떤 측면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어려워진 거지. 가령 석탄을 수출 못하니까 북한 주민들은 더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석탄값이 다 내려가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영훈 위원은 북한 정부가 선전하는 대로 “단기간에 북한 농업의 생산 증대와 그것에 연유한 식량수급 사정의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비핵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훈 위원] “북한이 지금 경제력이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북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 문제가 해결되고 이를 해결함과 동시에 외부 사회의 지원이나 경협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물적 토대를 갖춰놓고 개혁도 하고 그러면 선순환 구조가 되는 거죠. 개혁을 안 하고 국제사회의 지원만 들어가도 소용이 없고 단기적 효과만 있을 뿐이죠. 국제사회의 지원없이 개혁만 추구하면 그 개혁은 작동하지 않는 거죠. 그게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겁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