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만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해선 안되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합의를 하지 않은 건 옳은 결정이라고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이 밝혔습니다. 셔먼 전 차관은 20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은 협상 중에도 핵개발을 하는 게 확실하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미국은 추가 정상회담을 자제하고 실무진 간 협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밝은 경제적 미래’와 같은 비현실적 약속은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내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이란 핵 협상을 주도했던 셔먼 전 차관을 안소영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어떤 합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셔먼 전 차관)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그 상응 조치로 모든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협상안에 합의하지 않은 것은 옳았고 잘 한 결정입니다. 다만, 사전에 충분한 실무 협상을 거치지 않고 북한과 어떤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했다는 건 유감입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 외교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시는 건가요?
셔먼 전 차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이 ‘결정자’라고 믿는 두 정상이 만났고, 또 미국은 과거 다른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으니까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그의 ‘팀’이 먼저 협상에 나설 준비를 하도록 하고, ‘디테일’한 계획도 갖고 있어야 했습니다. 또 동북아 지역 동맹국 등 국제사회와 협의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도 결여됐습니다.
기자) 디테일을 말씀하셨는데, 과거에도 ‘치열하고 위험이 높은 협상에서 디테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죠? 북한과의 협상에서 ‘디테일’이란 무엇입니까?
셔먼 전 차관) 북한에 영변 핵시설 폐기는 모든 제재를 해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 미국은 협상에 나설 준비가 됐지만, 이제는 두 정상간의 만남을 우선시 하지 않고, 실무진 선에서 미국이 매력을 느낄만한 합의를 먼저 하겠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와도 매우 신중하고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무엇이 될까요?
셔먼 전 차관) 영변 핵 시설 폐기가 큰 (비핵화) 단계가 될 수는 있지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조치만으로 제재 해제를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죠. 북한은 영변 외 다른 핵 시설을 폐기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고, 또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검증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과거 북한과 협상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 검증 문제 때인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검증과 감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기자) 북한이 미국과 협상 중에도 핵 개발을 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셔먼 전 차관) 네, 확실합니다. ‘38노스’, ‘CSIS’등이 위성 사진을 분석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기자) 이런 북한이 미국과 두 번의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셔먼 전 차관) 북한에게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은 중대한 성과인 만큼, 국제적 적법성을 갖게 됐죠. ‘미스터리’였던 김정은의 베트남과 싱가포르, 중국 방문은 북한에 일종의 합법성을 부여한 겁니다. 또, 정상들과 찍은 김정은의 사진들은 북한 내부에서 최대의 선전용으로 악용될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 형을 살해한 김정은의 잔인성은 알고 있지만, 동시에 유엔가입국이기도 한 북한에게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서의 적법성을 확장시킨 기회였을 수 있습니다.
기자) 오바마 행정부 시절 강력한 제재를 가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지난해 북한이 극적인 변화를 보인 것이 제재 영향 때문일까요?
셔먼 전 차관) 국제사회의 제재가 북한을 압박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은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한동안 보여줬던 중국의 대북 제재가 북한에 큰 타격을 가했다고 봅니다.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만든 확실한 요인입니다. 따라서 제재는 계속 유지돼야 하고,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를 엄격히 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게 ‘두 가지의 길’이 있으니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계속 줘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면 제재를 완화 받는 길과, 핵을 계속 갖고 있으면 정권에게 좋지 않은 길이 있다고 말이죠.
기자) 미국은 북한 주민들의 ‘밝은 경제적 미래’를 약속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려 하는데, 좋은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셔먼 전 차관) 좋은 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 약속들이 달성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김정은이 미심쩍어 하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북한에 해외 기업이 진출하는 과정에서 정권이 약화할 것을 우려합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유인책으로 다른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할 겁니다.
기자) 과거 이란과의 핵합의를 이끄신 경험이 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에 적용시킬 부분이 있을까요?
셔먼 전 차관) 북한과 이란은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는 다른 나라들입니다. 이란은 북한과 달리 핵무기도 없고 운반수단인 장거리 탄도미사일 역량도 없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은 이란보다 훨씬 더 많은 도전이 따릅니다. 일단 다른 여러 국가들과 교역해 온 이란은 보다 강력하고 빠르게 경제 제재 타격을 받았지만, 북한은 중국과의 무역 거래가 대부분인 만큼, 이란보다 제재 영향을 덜 받습니다. 만약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 대북 압박에 엄청난 어려움이 생기죠. 북한과의 핵 협상은 이란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기자) 북한과 협상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는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셔먼 전 차관) 국무부 대북 정책 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은 굉장히 능력 있는 전문가입니다. 비건 대표가 다른 여러 국가와 협의하고 또 (북한과) 진전을 이루기 위해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계속해 나가길 희망하고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비건 대표와 마주 앉아 협상에 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 조정관을 지내며 북한과 협상했던 셔먼 전 차관으로부터 미-북 협상 전반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안소영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