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미국 정부는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제재 철회'를 전격 지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는데요, 대북 제재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박형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은 '빅딜'을 내세우며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것이란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폼페오 장관] "We have the toughest economic sanctions in history, but the most promising diplomatic engagement in history as well."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와 유망한 외교적 관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겠다는 의미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제재였습니다.
22일 미 재무부가 북한의 제재 회피를 도운 중국 해운사 2곳을 제재 명단에 올린 겁니다.
트럼프 정부의 올해 첫 독자제재이자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구체적인 압박 조치였습니다.
이와 함께 1년여 만에 해상에서의 불법 거래에 관한 주의보도 갱신 발령했습니다.
그러면서 석유 불법 환적과 북한 석탄 수출에 연루된 선박 60여 척을 무더기로 감시 목록에 추가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해운사가 소유한 운반선 '루니스호'도 들어갔습니다.
독자 제재로 중국을 겨냥하고, 주의 대상에는 한국 선박을 포함함으로써 관련국들의 제재 이행과 동참을 환기하려는 포석도 담긴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또 당장 협상이 재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보다 제재에 무게를 두겠다는 신호로도 여겨졌습니다.
이런 조치에 대한 대응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북한은 이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인력을 전격 철수했습니다.
한편 대북 협상의 실무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일찌감치 '압박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14일 유엔을 찾아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과 주요국 대표들과 만났습니다.
국무부는 비건 대표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북한 비핵화까지 안보리 제재 결의의 전면적인 이행을 논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19일에는 영국 런던을 방문해 영국·프랑스·독일 당국자들과 회동했는데, 유엔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중국·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됐습니다.
이어 비공개로 중국도 찾은 것으로 25일 확인됐습니다.
언론은 비건 대표가 중국 측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 의향을 전달하는 동시에 유엔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재무부에 대규모 추가 제재를 철회할 것을 명령했다'는 23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발표로 한동안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긴 '침묵' 끝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철회'를 언급해, 그 의미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이후 백악관은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를 지시한 제재가 기존의 제재가 아니라 새롭게 발표될 제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녹취: 샌더스 대변인] “Look, the sanctions that were in place before are certainly still on. They’re very tough sanctions, the president just doesn't feel it's necessary to add additional sanctions at this time. Nothing else...Like I said, the president likes him, they want to continue to negotiate and see what happens.”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며,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이날 북한은 자세한 설명 없이 전격 철수했던 남북연락사무소의 인력을 부분적으로 복귀시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제재 취소' 지시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공화당 중진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 외교위원은 "과거 어떤 정부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지적했고, 하원 외교위원장인 엘리엇 엥겔 의원은 대통령이 중대한 국가안보를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비난했습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 '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철회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복귀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호전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두드러진 '대북 압박'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에도 독자제재만 9차례 단행했습니다.
특히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를 보이는 시기 제재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에도 양국 간 냉각기가 길어지면 미국이 추가 독자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무역 협상 추이와 다음 달로 예상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올해 북한을 충분히 거세게 압박하는 문제에서 정말로 열쇠를 쥘 수 있다"고 언급한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협상과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최근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아 대외 정책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넓어진 점도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지, "서두를 것 없다"는 기조에 따라 압박을 조이는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