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사실상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사법 당국은 동남아 여성 2명 모두에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고 석방하기로 했는데요, 이에 따라 이번 사건과 북한 정권의 연관성 여부도 법적 규명이 어렵게 됐습니다. 박형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베트남 여성이 다음달 석방될 예정입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1일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 씨에 대해 그동안 적용한 살인 혐의를 철회하고 '상해죄'로 공소를 변경했습니다.
이날 법정에서 흐엉 씨는 상해 혐의를 인정했으며, 법원은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의 변호인 측은 흐엉 씨가 감형 처분을 받아 다음달 풀려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흐엉 변호인] "We are happy because ultimately she can go home within one month."
지난달 인도네시아 여성도 공소 취소로 전격 석방된 데 이어 베트남 여성까지 다음달 석방되면, 이제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한 재판은 2년여 만에 사실상 마무리됩니다.
살해된 사람은 있지만, 법정에서 '살인자'를 가려내지 못한 '미제 사건'이 되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사건 초기부터 관심이 쏠렸던 북한 정권과의 연관성 여부도 법적으로 밝혀지기 어렵게 됐습니다.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은 지난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동남아 여성 2명에게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고 숨졌습니다.
범행 직후 체포된 이 여성 2명은 리얼리티 TV쇼 촬영을 위한 '몰래카메라'라는 말에 속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 경찰은 북한 외교관을 포함해 북한 국적자 8명을 연루자로 지목했습니다.
[칼리드 말레이시아 경찰청장] “…one attaché to the North Korean Embassy and the other one, a staff of North Korean airline…”
이 중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했으며, 화학 전문가로 알려진 리정철 만을 유일하게 체포했습니다.
하지만 리정철의 혐의를 밝힐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채 국외로 추방 조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또 당시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외교관들에 대한 조사도 북한 측이 협조하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말레이시아주재 강철 북한 대사는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한국 정부와 결탁해 '정치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강철 대사] “This apparently shows that the investigation by the Malaysian police is not for the clarification of the cause of the death and such of the suspect, but it is out of the political game..."
이후 말레이시아 외교부는 강철 북한대사를 '외교상 기피인물'로 지정해 추방하고, 북한 외무성도 말레이시아 대사를 추방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외교관계가 단절됐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김정남 암살 사건과 북한 정권과의 연관성을 공식적으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데니스 이그네이셔스 전 말레이시아 정부 차관은 2017년 3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의 배후에 김정은 위원장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말레이시아의 시바난단 니디야난담 국제형사재판소 자문 변호사는 당시 ‘VOA’에, 암살에 사용된 물질의 종류를 고려할 때 북한이 배후라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김 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7년 3월 대니얼 러셀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북한 당국의 연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해 11월 유엔총회 제1위원회는 화학무기 사용 금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VX 신경작용제가 사용된 김정남 살해사건'에 대해 우려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다면 관련 문구에는 북한 정권을 가해자로 지목하거나 당시 사건을 저지른 관계자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같은달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면서 ‘해외 영토에서 일어난 암살사건을 포함해 반복적으로 국제테러 행위를 지원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김정남 암살사건과 북한 정권의 연관성을 사실상 인정한 건데, 이런 입장은 이듬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지난해 3월 미 국무부는 "1991년 생화학무기 통제와 생화학전 철폐법에 의거해 북한 정부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를 사용해 김정남을 암살한 것으로 판단했다"다는 내용을 관보에 게재한 겁니다.
하지만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말레이시아 사법 당국이 유일한 피고인 2명에 모두 '면죄부'를 줌에 따라, 법정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혀내는 일도 멈추게 됐습니다.
VOA 뉴스 박형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