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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아메리카]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 스턴


지난 1997년 아이작 스턴이 뉴욕의 자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아이작 스턴이 뉴욕의 자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인물 아메리카'. 오늘은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 스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물 아메리카 오디오]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아이작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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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칭송받는 아이작 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인이기도 합니다. 스턴은 유명 콘서트 무대에서 수많은 연주를 했고, 뛰어난 음악인들을 양성했으며, 미국은 물론 여러 다른 나라의 예술 진흥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스턴은 국제 문화 대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스턴은 교사이기도 했고 인권 운동가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1920년 러시아의 크레메네츠,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생후 10개월 때 부모와 함께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작이 6살 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작은 8살 때인 어느 날 친구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10살 때부터는 샌프란시스코 컨서버토리, 즉 음악원에서 정식으로 레슨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작은 놀라울 만큼 빨리 실력이 늘어났습니다. 불과 11살 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였습니다. 1933년, 13세 때 리사이틀 데뷔를 했고, 1936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으로 오케스트라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이 장면은 미국 전역에 방영이 됐습니다.

17살 때에는 동부의 뉴욕시를 방문해 연주회를 열었고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20세가 됐을 때는 연간 콘서트 출연 횟수가 90회를 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아이작 스턴은 수 만명의 미군들을 위한 위문 공연을 자주 다녔습니다. 군인 중에는 클래식 음악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아이작 스턴은 미국 바이올린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해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예술인들의 국외 이주를 허용하지 않는데 대한 항의 표시로 다시는 그 나라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과는 매우 가까운 관계를 갖고, 젊은 음악인들과 문화 예술 단체를 지원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아이작 스턴은 1년에 콘서트가 100번을 넘어 그가 활동했던 시기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음악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스턴은 작곡가 63명의 200여 작품을 100장 이상 녹음해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녹음한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1960년 뉴욕시에서는 카네기홀을 헐고 고층 사무용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이 추진됐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예술인, 시민, 정치인들을 포함한 단체를 조직해 건물 철거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카네기 홀은 사라질 운명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그로 인해 새로 설립된 카네기 홀 재단의 이사장이 됐고 40년 동안 공연장을 이끌었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예술 발전과 자유 증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64년 국립예술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이 설립됐을 때는 자문 역을 담당했습니다.

중국이 서방에 문을 열었던 1979년, 아이작 스턴은 베이징 정부의 초청을 받아 그곳 음악가들과 학생들에게 서양 고전 음악을 강의했습니다. 동서 문화를 다시 연결시킨 그 방문은 “마오에서 모짜르트까지: 아이작 스턴 중국에 오다”라는 제목의 기록 영화로도 남겨졌습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도 받았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열정적으로 젊은 음악인들을 지원도 하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가 지원한 음악인 중에는 바이올린 연주자 이츠하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 첼리스트 요요마, 피아니스트 예핌 브롬프만 등 세계적인 인물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1992년 아이작 스턴의 목에 바버라 부시 여사가 ‘대통령 자유메달’을 걸고 있다.
지난 1992년 아이작 스턴의 목에 바버라 부시 여사가 ‘대통령 자유메달’을 걸고 있다.

​1984년에는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받았습니다. 1986년 뮤지컬 아메리카는 그를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했으며, 1992년에는 국민의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습니다. 아이작 스턴은 또 컬럼비아대학, 커티스음악학교, 하버드대학, 줄리아드음악학교, 예일대학 등으로부터 각종 명예학위를 받았습니다.

“음악이란 훌륭한 음악가를 생산하는데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명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힘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한 아이작 스턴은 2001년 뉴욕에서 타계했습니다. 향년 81세. 아이작 스턴은 진정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음악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예술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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