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북한을 오가며 한반도를 취재해온 워싱턴 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베이징 지국장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주목할 만한 변화로 평양의 화려한 외관 변화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외신 기자들의 현지 취재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VOA는 북한을 오랫동안 다뤄온 서방 기자들로부터 취재 경험과 현지 사정을 듣는 인터뷰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순서로 워싱턴 포스트의 애나 파이필드 베이징 지국장을 조은정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을 10번 넘게 방문하며 현지 상황을 집중 취재하셨는데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어떤 변화가 가장 눈에 띕니까?
파이필드 지국장) 기자들에게 있어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늘 그랬듯이 여전히 어렵죠.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김정은 정권이 외부에 보여주기 원하는 진열장 같은 도시인 평양은 매우 많이 변했습니다. 고층 건물들이 많아졌고, 볼링장, 커피숍이 생겼습니다. 또한 평양의 일부 지역은 좀 더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정권을 지지하는 특권층의 삶이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전략적으로 지지층의 삶을 개선하려 했고, 특히 자신의 나이 또래인 밀레니얼 세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 2016년 쓰신 기사에선 평양을 미국 맨해튼에 빗대 ‘평해튼’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해 주목을 끌었는데요. 왜 국제사회가 이 단어에 반응했을까요?
파이필드 지국장) 제가 공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만든 단어가 아니고 신문에 소개했을 뿐이니까요. 평양에 사는 외교관들과 서방인들이 평해튼이라고 이미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단어가 주목을 끈 이유는 지난 5년여 기간 동안 북한의 수도에 일어난 일을 깔끔하게 한 단어로 압축했기 때문입니다. 평양은 화려해졌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평양 주민들은 돈을 쉽게 빨리 벌고, 돈 많은 자본가의 삶을 누리고 있죠. 물론 맨해튼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긴 하지만요. 한번은 제가 대동강 남쪽에 서서 북쪽의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제 감시원이 제게 “두바이 같죠?”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웃으면서 두바이를 가봤냐고 물었는데요. 그 감시원은 중국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평양을 두바이에 견줄 수 있는 도시로 발전시키려는 포부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죠.
기자) 파이필드 지국장님은 또 2016년에 사상 최초로 북한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페이스북 생방송을 했습니다. 외신의 취재를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 당국에 항의하는 행동이었습니까?
파이필드 지국장) 항의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 생방송을 할 당시 북한 당국자들은 제가 뭘 하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었죠. 북한이 제7차 노동당 대회에 외신 기자들을 대거 초대했던 2016년에는 ‘페이스북 라이브’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었는데요. 저는 그 해에 북한에 제 전화기와 SIM카드를 처음으로 가지고 갔죠. 과연 생방송이 되는지 시험적으로 시도했는데, 3G 신호가 충분히 강력한 장소는 몇 군데 되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37층에 있던 제 호텔방이었고요. 저는 그 곳에서 제 눈에 보이는 북한을 비춰주며 설명했습니다. 생방송 채팅창에는 “너무 위험하다”, “살아서 나올 수 있겠나?” 라는 등의 의견이 올라왔는데요. 저는 북한 정부가 허락한 장소만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있었기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은 뒤늦게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얘기했죠. 그냥 제가 스스로를 영상으로 찍고 있는 줄 알았다고요.
기자) 2016년 제7차 당대회를 취재하러 평양을 방문한 서방 기자들은 북한의 통제를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지난해에도 북한은 소수 외국 기자들을 초대해 풍계리 핵 실험장 해체 현장을 공개했지만 역시 방사능 측정 기구를 압수하는 등 엄격하게 통제했죠. 반면 미국 CNN 방송이 북한 내 미국인 억류자들이나 고위 당국자들을 여러 차례 단독 인터뷰 한 점도 눈에 띕니다. 김정은 정권이 서방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파이필드 지국장) 북한은 언론과 관계를 맺고 상황을 유리하게 포장하는 데 있어 좀 더 전술적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우 미미한 변화죠. 북한이 갑자기 지혜로워 지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이 언론에 좋은 기사를 내길 원한다면, 공장이나 병원에 기자 130명을 한꺼번에 데려가는 것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쓸만한 기사를 작성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좀 더 슬기로웠다면, 제대로 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도록 소규모 견학들을 기획했겠죠.
기자) 파이필드 지국장이 집필한 김정은 위원장 평전 ‘마지막 계승자’가 최근 출간됐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을 다룬 다른 책들과 어떻게 차별화됩니까?
파이필드 지국장) 지금까지는 한국어와 일본어로만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책이 출간됐고, 영어로는 처음입니다. 제 책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 어떻게 그가 지금의 인물이 됐는지를 포괄적이고 호소력 있는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임무에 매우 전술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군 경험이 없는 20대 지도자에게 불만이 있을 수도 있는 북한 군부를 달래기 위해, 또 미국을 물리치기 위해 핵개발에 나선 것이죠.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병진정책의 두번째 단계에 착수했는데요 경제를 성장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기자) 2016년에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인 고영숙 씨와 이모부 리강 씨를 단독 인터뷰하셨습니다. 어떤 점이 인상 깊으셨나요?
파이필드 지국장)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이모부 리강 씨는 북한에 잘 보이려는 목적으로 저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평양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했죠. 리강 씨는 자신이 북한을 잘 알고 미국에도 20년이나 거주했기 때문에 두 나라간 가교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모인 고영숙 씨는 남편이 북한에 돌아가길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돌아가지 못했죠. 인터뷰 당시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평범한 아이로 묘사하기 위해 매우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생일파티를 열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으며, 농구를 좋아하고 숙제를 싫어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비춰보면 김정은은 물론 응석받이였지만, 꽤 평범했고, 정신병자가 아니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를 학대하는 등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때 김정은을 ‘미치광이(nut job)’라고 불렀지만, 김 위원장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징후도 없었습니다.
기자) 워싱턴 포스트의 서울 특파원으로, 파이낸셜 타임스의 워싱턴 특파원으로 북한을 취재하셨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수도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얼마나 다른가요?
파이필드 지국장) 매우 다릅니다. 한국은 북한을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고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에서 북한 문제는 매우 정치적입니다. 보수와 진보 중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에 따라 대북 정책은 극과 극을 달리죠. 심지어 북한에 대한 정보 사안도 정권의 영향을 받습니다. 미국은 반면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을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북한의 의도에 대한 이해와 접근법이 피상적입니다.
기자) 북한 문제를 오래 다루셨는데, 취재 대상으로부터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워낙 독특한 국가이지 않습니까?
파이필드 지국장) 그렇습니다. 특히 북한을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무심히 듣기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수백명의 탈북민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혀 쉬워지지가 않습니다. 강제 수용소 출신이 아니라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경험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또 제 자신이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북한과 중국에 두고 떠나는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가장 제게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저는 기자로서 약간의 거리를 두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저도 인간이기에 취재한 내용들에 감정을 가지게 되고, 오히려 이러한 감정들이 기사에 투영 됐을 때 독자들의 이해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열 차례 넘게 북한을 방문하며 현지 상황을 근접 취재해 온 파이필드 워싱턴 포스트 지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내일은 진 리 전 AP 통신 평양지국장과의 인터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대담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