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대북 인도주의 지원단체의 활동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면제 조치가 활기를 띤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대북 외교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모금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내부 실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국제기구의 방북을 허용한다면 국제사회가 대북 지원에 좀더 적극 나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올 한 해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변화를 안소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 속에 올 한 해 주목된 건, 인도적 지원에 대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유연성이었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따라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들은 북한을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인도주의 목적의 특정 사안은 제재 면제 대상이라는 조항이 탄력을 받은 겁니다.
2019년 12월 25일 현재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제재 면제 신청을 승인한 건 수는 40여 건. 지난해 허가한 17건보다 2배 많은 수치입니다.
특히 지난 9월에는 유럽연합 식량안보 사무소와 세계보건기구 (WHO), 월드 비전, 유럽연합, 독일의 세계기아원조, 프랑스의 트라이앵글 제네레이션 휴머니테어 등 8곳의 면제 신청을 한꺼번에 승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WHO는 아일랜드의 구호단체 ‘컨선 월드와일드’와 차량 석 대의 대북 반입을 승인받았습니다. 당시 질병 예방백신을 위한 연구소와 장비 등 43개 품목을 허가 받은 지 사흘 만에 추가 면제 조치를 받은 겁니다.
올해 안보리는 대북 지원단체에 대한 면제 허가 건수만 늘린 게 아닙니다. 이들이 면제를 신청하고 승인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크게 단축시켰습니다. 지난해 최대 다섯 달이 걸렸던 절차가 올 여름 한 달로 줄어든 데 이어, 더욱 짧아진 겁니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의 유엔대표는 지난 13일 VOA에,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제재 면제 심사가 빨라져 신청 후 5일에서 10일 안에 승인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인도주의 지원 활동에 대한 제재 면제 승인 기간이 단축되기 시작한 건 지난 3월부터입니다.
프리미어 어전스와 유엔인구기금 등 6개 기구가 한 달 안에 면제 승인을 받았고, 지난해 신청에서 승인까지 5개월 넘게 걸렸던 유니세프의 4월 신청은 8일 만에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앞서 안보리의 더딘 심사 과정을 지적했던 재미한인의사협회는 지난 7월, 하버드 의대와 존스홉킨스대학과 함께 최근 2년 간의 유엔을 통한 대북 인도주의 지원 내역을 조사한 결과, 올해 신청에서 승인까지 평균 보름이 걸린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평균 99일이었던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진 겁니다.
이같은 안보리의 변화는 인도적 지원 활동을 벌이는 국제 구호단체들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과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구호단체들은 제재로 인한 대북 지원의 차질을 강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제재 때문에 송금 창구와 생필품 공금망이 제한되고, 지원물품을 싣고 갈 선박조차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특히 유니세프는 안보리에 신청한 대북 반입 물품 일부가 거절된 첫 사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샤넬 홀 UNICEF 부총재] “We had the first rejection of some of the items that we submitted to the sanctions committee ever, also, that the sanctions committee process takes longer.”
유니세프는 또 치료약 등 물자 반입에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각국의 조치도 눈에 띄는 한 해였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지난 11월, 의료와 수술 장비 등의 대북 수출입과 운송 등을 금지해 온 법안을 개정했습니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승인한 품목에 대해 대북 지원과 관련한 규제에서 예외를 적용하기로 한 겁니다.
[녹취: 마엔피쉬 스위스 연방 경제정책청 공보담당관] “The amendment to toe Ordinance means that the delivery of humanitarian and other goods for which an exception has been granted by the UNSC can in future also be authorized under Swiss Law.”
파비안 마엔피쉬 스위스 연방 경제정책청 SECO 공보담당관은 이번 조치는 안보리가 제재 면제를 인정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기타 물품 반입에 대해 스위스 법으로도 반출을 승인하는 것으로, ‘법적 확실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제재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아예 대북 활동을 접은 구호단체들도 있습니다. 21년 동안 북한 지원 활동을 해 온 핀란드의 민간단체 ‘핀란드개발협력기구 FIDA’가 대표적입니다.
이 단체는 지난 6월, 국제금융체제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 OFAC 조치로 활동이 어려워 지원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영국의 ‘세이브 더 칠드런’, 국제 구호단체 ‘휴매니티 앤 인클루전’도 제재로 인한 자금 유입 경로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북한에서 철수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19년은 대북 지원 자금 모금 규모가 사상 최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합니다.
12월 11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기 위해 소집된 안보리 회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됐습니다.
모하메트 키아리 유엔 사무차장은 올해 북한 내 취약계층 380만 명을 돕기 위한 유엔의 인도주의 사업에 1억 2천만 달러가 필요하지만 8천 700만 달러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주민의 생명을 살리는 인도적 지원 활동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녹취: 키아리 사무차장] “The breakdown of diplomacy wouldn’t help human rights or humanitarian situation in the DPRK. Meeting the population’s basic need of food, access to essential health services, and to clean water and adequate sanitation are a humanitarian imperative and a basic human right.”
기본적인 식량과 보건, 깨끗한 식수, 위생 등을 보장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에서 꼭 필요한 일이자 인권의 기본인데, 북한과의 외교가 주춤하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겁니다.
‘유엔 국가팀’도 북한 주민 40% 이상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어린이 20%가 발육부진 상태로 신체, 인지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만성적인 식량난과 자연재해 등으로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은 암울한데, 지원 자금은 목표액의 20%로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이 활성화하려면 북한 정권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특히 북한 당국이 6년째 허용하지 않고 있는 국제기구의 현지 농작물 수확량 조사 등 북한 내부 조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취약 지역 주민들의 식량 섭취량과 영양 상태, 작황 실태를 조사해야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에 효과적인 대북 지원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원 물품이 대상 계층에 제대로 분배됐는지에 대한 투명한 검증 문제도 해결돼야 합니다.
2010년부터 북한의 결핵과 말라리아 환자 치료와 예방을 위해 1억여 달러를 지원해 온 국제 협력기구 ‘글로벌 펀드’가 지난해 대북 사업을 중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기구는 구호단체들의 잇단 도움 요청에 따라 내년에 신규 대북 지원금 4천 170만 달러를 승인하고 북한 활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지원 사업 현장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독립적 검증을 포함한 최종 합의안에 북한이 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에 대해서는, 외부 지원이 북한 정부의 책임을 덜고 무기 등 군사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배고픔에 고통받는 주민들은 조건 없이 도와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부딪혀 왔습니다.
2020년 새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 행보가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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