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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한 잇단 대북 인도적 지원 협의…“북한 호응 시 신뢰 형성 계기 가능성”


성 김(왼쪽)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하고 있다.
성 김(왼쪽)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방역 분야에서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활발하게 논의하는 가운데 북한은 국제기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지원을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경제 회생을 위해서라도 안정적 백신 공급처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한국과의 접촉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노규덕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만난 데 이어 일주일만인 30일 워싱턴에서 또 한 차례 미-한 북 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습니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 분야에 대한 후속 협의를 진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앞선 서울 회동에서도 보건과 감염병 방역, 식수와 위생 등 가능한 분야에서의 대북 인도적 협력 방안과 함께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미-한 두 나라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교착 상태에 놓인 미-북,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마중물’로 삼으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에게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하는 것이고 북한과의 대화를 연계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북한이 대화로 나오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인도적 지원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묻는 질문에 “북한의 상황이나 인도적 수요, 북한의 호응 등이 종합적으로 판단이 돼야 한다”며 “사업계획을 말하기 어렵지만 지금 단계에선 감염병 방역과 보건, 식수, 위생 등을 대상으로 미-한이 논의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미-한 양국은 북한과 관련 접촉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보건 방역 분야에서의 인도적 지원 시급성이 더 커졌을 것으로 판단하고 해당 분야를 우선순위에 놓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국제백신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로부터 배정받은 중국산 신종 코로나 백신 시노백 297만여 회분을 받지 않고 다른 나라에 양보할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지난 3월엔 코백스가 배정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90만2천 회분에 대해 준비절차 등 미비로 아직 수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신 저온유통체계인 콜드체인 등이 갖춰지지 않은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최대 위협이 신종 코로나라며, 백신과 접종하기까지의 유통시스템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북한은 사실은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가 경제에 핵심적인 치명타를 주고 있거든요. 따라서 북한으로선 지금 백신이 아주 시급합니다. 시노팜 시노백이 돌파감염이 상당히 심하고요 그리고 효용성도 입증이 안됐기 때문에 북한이 불신하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그 해답을 미국과 한국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 핵 협상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과 한국의 대표들이 연이어 만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를 주된 의제로 다루고 있는 점도 주목됩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성 김 대표와 노규덕 본부장간 해당 논의가 구체화돼 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도 신종 코로나가 진정돼야 북한과의 대화 재개가 가능하다고 보고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북한의 보건 위기 극복을 인도 지원함으로써 향후 북-미 대화 재개의 마중물을 만들겠다, 이런 의도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북-미 대화가 재개가 안되더라도 미국이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핵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제스처가 인도 지원이다, 이렇게 보는 거에요.”

전문가들은 대북 적대시 정책 우선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북한이 백신 등 인도적 지원을 대가 삼아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잇단 변이 출현으로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백신 지원을 위한 미-한과 북한 간 접촉이 이뤄질 경우 기초적인 신뢰 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미국과 한국은 국제기구를 통해서라도 북한에 백신과 콜드체인 등 유통시스템을 제공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간접 지원 방식에 대해선 북한도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이렇게 걸어 잠그고만 있을 수 없다, 물론 초특급 방역체계가 나름대로 자기들이 신뢰한다고 하니까 그 방역체계 자체는 괜찮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상태로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은 어렵거든요. 어떻든 그 문을 열기 위해선 단기적으로 빨리 백신을 공급받는 체계로 바꿔야 된다는 것은 북한이 인식을 하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선 아마 유엔기구를 통해서 북한과 미국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요.”

전문가들은 미-한 두 나라가 전례에 비춰 대북 인도적 지원의 내용이나 규모 등을 미리 공개하는 데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습니다.

상대가 북한이라는 특성상 미국이나 한국 내부의 여론을 살펴야 하고 섣부른 공개가 북한을 자극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까지 쌀 5만t 사건이 그건데요. 그걸 미리 얘기하게 되면 협상력이 떨어지고요. 또 그게 북한의 운신의 폭을 줄이는 감이 있습니다. 5만t이면 북한이 원하는 거에 비해 너무 작고 그렇다고 수 십만t을 얘기하면 한-미 내부의 보수적 여론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거든요.”

앞서 한국 통일부는 지난 2019년 6월 제30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쌀 5만 t 대북 지원사업에 대한 사업비를 의결했으나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을 이유로 거부해 사업이 보류된 바 있습니다.

통일부는 지난해 12월 세계식량계획, WFP로부터 사업관리비 전액을 환수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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