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권수립 기념일 행사를 대외 메시지 없이 내부 결속에 집중하는 양상으로 치르면서 향후 어떤 대외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다음달 노동당 창건 기념일까지는 대화의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대미ㆍ대남 압박의 강도를 서서히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9일 정권수립 73주년 기념일을 맞아 공개적 대외 메시지는 일절 없이 주민들의 사기 진작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행사들을 잇따라 진행했습니다.
비정규군 중심으로 치러진 열병식은 비교적 짧은 시간 진행됐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가에 기여한 공로자들을 노동당 본부청사로 불러 직접 연회를 주재했고, 부인 리설주 여사와 고위 간부들을 대동해 선대 수령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평양에서 근로자와 청년학생 군중시위와 사회주의여성동맹의 무도회가 열리는 등 각지에서 경축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는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인 이른바 정주년 기념일과 비슷한 규모의 행사였다는 평가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달 북한 지도부가 미-한 연합훈련 반발 담화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미국과 한국에 안보 위협을 경고했던 점을 고려할 때 내부 결속에만 초점이 맞춰진 이번 행사가 다소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북한은 앞서 지난 3월엔 김여정 부부장이 미-한 연합훈련 비난 담화를 낸 뒤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의 개량형을 시험 발사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박형중 박사입니다.
[녹취: 박형중 박사] “이번 행사에선 직접적인 대외 메시지는 없었지만 간접 메시지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현재는 긴장을 고조시킬 단계는 아니다, 그러니까 일단 북한 쪽에선 시간을 좀 더 벌면서 기회를 보겠다 이런 식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던졌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 같은 내치에 집중하는 움직임이 결국 비핵화 협상 재개를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따른 국경 봉쇄 장기화로 경제난이 악화되는 가운데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카드를 버리기 쉽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교수는 ‘도발 후 협상’이라는 북한의 미국을 다루는 기존 행동패턴을 조 바이든 대북 외교라인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북한도 감안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섣부른 도발 보다는 문재인 한국 정부의 중재를 압박하고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상황을 이끌어가려 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금 현재 다시 김정은이 도발을 통해서 미국을 장악하기 보다는 지금 또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와 중국이라는 두 중재자를 통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미국에 전달하고 미국이 그것을 받아서 자기들 나름대로 협상전략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라는 거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영변 핵 시설 재가동을 통해 북한의 압박은 이미 시작된 셈이라며 대화의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대미 협상 재개가 여의치 않을 경우 다음달 10일 노동당 창건일에는 이번과는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그러니까 압박 수위를 높일 겁니다. 이미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영변 때문에. 그렇게 본다면 돌파구가 마련이 안 될 경우 단거리 발사체나 영변 활동의 가속화나 여러 가지 행보를 중저강도로는 할 거에요. 그러다가 10월10일 당 창건기념일 때 고강도의 신무기들을 보이는 그런 열병식까지는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북한의 대미 압박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며 내치에 집중하는 북한 지도부의 행보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도발은 우방국인 중국의 내년 초 베이징올림픽에 미칠 영향을 감안했을 때 오는 10월 말 이전에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김진무 교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가 최근 북한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불허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이를 재고할 여지를 남겨둔 데 대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김 교수는 한-중 두 나라는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를 대화 국면으로 바꾸려는 공통된 인식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녹취: 김진무 교수] “한-중 외교장관이 중요한 이슈로 두 가지죠. 하나는 IOC 결정을 번복하는 것과 두번째는 지금 어려운 북한이 어떻게 하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게 만들 것인가 이게 큰 이슈라고 봅니다.”
조한범 박사는 신종 코로나 유입에 극도로 예민한 북한으로선 베이징올림픽 참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며 다만 대미 전선에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남북 정상을 올림픽에 초대할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14일 도쿄에서 열리는 미-한-일 북 핵 수석대표 협의와 관련해 조 박사는 북한이 영변 카드로 압박에 나선 가운데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과의 협상 재개의 돌파구가 될만한 카드에 대해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