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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종전선언' 카드 다시 꺼내...전문가들 "북한 도발 속 실현 가능성 의문"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 제안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교착 국면에 반전을 만들만한 상황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뉴욕 현지 시간으로 21일 행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당시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라고 다소 원론적인 언급에 그친 데 비해 이번엔 보다 구체성을 담은 발언이었습니다.

이번 종전선언 제안은 시기적으로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는데 당시엔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외교가에서 종전선언 논의가 오가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북 간 교착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최근엔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 발사와 영변 핵 시설 재가동, 그리고 문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 등으로 관계 경색이 심화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상황 타개를 위한, 임기 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 제안의 효과를 의식한 듯 북한의 최근 연이은 도발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문 대통령이 장기 교착 국면을 비핵화 협상 국면으로 돌려 놓기 위한 관련국 정상들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한 연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 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문 대통령이 임기 8개월을 남기고 지지부진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결실을 맺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연설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그러나 북한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데다 미-한 간 충분한 조율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특히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아무런 사전 조치 없는 종전선언에 경계심이 강한 미국이 받아들일 국면이 아니라는 게 신 센터장의 진단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과 대화가 진전되고 비핵화가 진전돼야지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존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종전선언을 일방적으로 언급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도 이미 정치적 상징성만을 갖는 종전선언에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북한이 최근 핵 무력 강화 조치들을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에 합의할 경우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이 된다는 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미-중 전략경쟁 격화와 이에 따른 북-중 밀착 강화도 종전선언 합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미-중 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상황에서 특히 중국이 북한 입장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의미를 미국이 너무 잘 알죠. 그것은 결국 적대시 정책의 끝인 동맹 약화. 해체, 주한미군 철수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당연히 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것을 받을 수 있느냐.”

미-한이 종전선언의 성격과 필요성에 공감대를 만들 경우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입구로서의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수준의 선언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사 체제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문재인 정부로선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와 이런 견해 차이를 좁히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며 이와 함께 중국은 미국과 남북한 3자 종전선언에 유연해진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박사는 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해 온 북한에게도 관련국들이 종전선언에 긍정적일 경우 일단 대화에 나설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영변 폐기 대 대북 제재 해제가 아니고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북-미 협상 재개를 원한다고 바꿨기 때문에, 종전선언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가장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종전선언에 대해선 중국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또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외교 얘기를 또 했거든요. 종전선언은 교착 상황을 풀 수 있는 탑다운 방식의 새로운 모색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연설에서 북한을 실제로 대화 테이블에 끌어내기 위한 장치인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 그리고 남북대화로 역내 평화를 선도하겠다는 ‘한반도 모델’ 구상도 거듭 소개했습니다.

또 “북한 역시 지구공동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며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에 북한의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북한이 다자협력에 참여하는 것을 토대로 국제사회에서 안전을 보장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입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국제사회에 대해서 대립과 대결적인 입장을 갖지 말고 남북한 같은 경우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고 코로나에 대해서 공동방역 보건협력 플랫폼에 같이 참여해서 상생하자 그런 거죠. 그러니까 북한의 경직된 사고와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인식을 전환하라는 것을 에둘러서 표현한 거죠.”

문재인 정부가 이처럼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구상들을 다각도로 내놓고 있지만 미-북 간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한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입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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