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월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한 뒤 5개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방향성과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모호한 원칙론만을 내세운 채 북 핵 개발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인데, 상황 관리 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전문가들의 비판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원칙론 단계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전제한 상황에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외교를 모색하는 실용적이고 조정된 접근’이라는 대북정책의 뼈대에 어떤 외관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 중 북한 관련 언급에 대해 워싱턴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녹취: 바이든 대통령] “We seek serious and sustained diplomacy to pursue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e seek concrete progress toward an available plan with tangible commitments that would increase stability on the peninsula and in the region, as well as improve the lives of the people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 위해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모색한다”는 연설 내용은 그동안 밝혀온 대북정책 원칙을 재확인한 적절한 수위의 발언이었다는 평가와 북 핵 문제에 대한 미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방증하는 모호한 표현일 뿐이라는 비판으로 나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이 중요한 업무를 성공으로 이끌 열쇠이자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핵심 요소인 ‘되돌릴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같은 말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 “No words like irreversible and verifiable denuclearization, which will be the key to success of that important undertaking, which is a key element in maintaining peace and stability in the Peninsula.”
비핵화 로드맵을 상세히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핵 문제에 대한 시급성, 그리고 비핵화 과정에 적용될 원칙과 구체적인 목표마저 실종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맥을 같이 합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애매성’ 비판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한 관련) 세부 사항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타당한 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고자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I think it's a valid point, because there's no detail coming out of the Biden administration…I think the Biden administration is intentionally being vague, because they want to bring North Korea back to the negotiating table.”
하지만 미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메시지는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와 비핵화 목표의 큰 그림을 확인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모호한 수사를 정책이나 의지의 결여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서 극적이거나 새로운 어떤 것을 보지 못했다”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로 충분한 것이지 추가적인 수식어는 필요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가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 역내 안정과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언급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I don't see anything dramatic or new in the President's statement. I think "complete denuclearization" says enough, we don't need additional modifiers, and I'm pleased he referred to serious and sustained diplomacy, stability in the region and improving the lives of the people of the DPRK.”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미 행정부의 많은 북한 관련 성명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유엔 발언은 광범위하고 확신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향후 진로에 대한 어떤 세부 사항도 들어있지 않은 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Like many of the administration’s statements on North Korea, the President’s UN remarks seem designed to be broad and reassuring, but clearly lack any detail about exactly what the path forward is.
하지만 “검증 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런 주장은 북한이 대화를 더욱 꺼리도록 만들 뿐이므로 나중에 북한이 혹시라도 협상 테이블로 나올 때나 꺼낼 주제”라고 밝혔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t's not surprising that there is no reference to verification or CVID.Making these points would only serve to strengthen Pyongyang's reluctance to talk.These are topics for a later time, if North Korea ever deigns to come to the negotiating table.”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책이 ‘너무 모호하다’는 비난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를 모색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외교가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한 사전 논의조차 꺼린다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인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의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I don’t understand the charge that US policy is “too vague.” The Biden administration has made it very clear it wants to explore a dialogue with North Korea with no preconditions. If Kim is unwilling to even engage in preliminary discussions about what diplomacy might look like, I don’t think the US is obliged to be unilaterally putting goodies on the table.”
매닝 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좀 더 긴급성을 주입하고 포괄적인 외교적 해결에 대한 미국의 갈망을 강조하면서 본질적으로는 현 미국 정책을 되풀이한 것”이라며 “‘돌이킬 수 없는’ 혹은 ‘검증 가능한’과 같은 표현을 빠뜨린 것이 미국의 목표와 관련해 어떤 변화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진단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He essentially reiterated current US policy, perhaps trying to inject a bit more urgency, underscoring US desire for a comprehensive diplomatic solution. I don’t think his omission of words like irreversible or verifiable signify any change in US objectives.”
이어 “핵 프로그램을 재건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열망이지만, 1994년 제네바합의와 6자회담이 투명성 문제로 결렬된 것을 고려할 때 검증은 미국이 서명할 어떤 합의에서도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The term irreversible was always overly-aspirational – Unless you ban the teaching of physics in North Korea, there would always be some possibility of reconstituting its nuclear program. There is no question that a core problem has been verification. Previous deals – the 1994 Agreed Framework and the 6 party talks collapsed due to Pyongyang’s refusal to agree to adequate transparency. So that is a given precondition of any deal the US would sign.”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고수하며 북한과의 대화 의사를 밝히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은 여전합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생화학방어 선임국장을 지낸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관여 일변도(engagement only)’ 대북 정책의 연장선”이라며 “불행하게도 미국의 우리의 동맹국들은 이미 이 정책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Biden’s UN speech is a continuation of his “engagement only” North Korea policy. Unfortunately, the United States and our allies have tried this policy before, and it failed every time.”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해선 경제·외교·군사 압박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정책을 수용해야지, 관여와 상당한 제재 완화를 제공하면서 느슨한 핵 관련 약속을 받아내 봐야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앤서니 루지에로 FDD 선임연구원] “Biden should embrace a policy that uses all tools at his disposal, including financial, diplomatic, and military pressure to encourage Kim Jong Un to negotiate. Offering engagement and significant sanctions relief for weak nuclear commitments will not work.”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이같은 불만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프랑스와의 외교적 갈등과 맞물려 ‘바이든식 동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낳고 있습니다.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바이든 정권의 지난 9개월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재앙”이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항복함으로써 북한과 같은 독재 정권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대담하게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부보좌관] “The last nine months of the Biden regime have been an utter disaster,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With the surrender in Afghanistan, dictatorial regimes such as Pyongyang have been emboldened as never before.”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자문관을 겸했던 고르카 부보좌관은 “김정은은 바이든의 무기력하고 약한 태도를 이용해 한국을 훨씬 더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자유 한국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부보좌관] “Kim will exploit Biden’s feckless and weak stance to endanger South Korea even more. I pity the people of free Korea.”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 등 외교 정책 전체를 겨냥한 혹독한 비난에 대해 워싱턴 일각에서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실책이 북한 문제를 키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함과 반동맹적 태도를 이용해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확실히 바이든 대통령은 그것보다는 잘하고 있다”고 맞받았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Kim already exploited Trump's fecklessness and anti-alliance posture to seriously damage ROK and US security, and Trump also gave NorthKorea the green light to continue missile testing.Surely Biden is doing better than that.”
미 전직 관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진영 논리를 떠나 이미 오래전 미궁으로 빠져든 북핵 문제에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지적했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이 누가 되든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강제적 비핵화 압박 대신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수미 테리 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혹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대북 정책을 의식적으로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놔두는 이유”라고 분석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목표는 북 핵 문제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위기관리에 맞춰져 있다”는 설명입니다.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I do think the Biden administration is consciously leaving the North Korea policy broad and vague, because they have a sense that they don't exactly know where to take this, what the next steps are. I think the immediate goal is just to not let North Korean nuclear…get out of control. They just want to manage the crisis.”
특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미국·영국⋅호주 3국의 잠수함 계약 관련 문제 등 다른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 “They have other other priorities frankly. Look at Afghanistan. Look at Australia-United States-UK deal with the submarines—and they have other issues to focus on. They're pretty much admitting that they don't really have a solution when it comes to North Korea, and they don't have a detailed plan.”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도 “북한이 원하는 일방적 양보와 유인책을 제공하려는 게 아니라면, 현재로선 모호하고 일반적인 표현 외에 미 행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며 이같은 분석에 동의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re is little beyond vague and general formulations that the administration can offer at this point, unless it is also prepared to offer unilateral concessions and inducements, which is what North Korea wants, but which is a very bad idea. So where do things stand?The United States continues to rightly insist on denuclearization -- which Pyongyang will not accept.And Pyongyang insists that it is already a nuclear power and demands that Washington accept it as such --which Washington cannot do.”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비핵화를 마땅히 계속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진퇴양난에 빠진 북 핵 문제의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