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29일 국제 여성인권 수호자의 날을 맞아 정치적 편견 배제와 함께 ‘밖에서 안으로’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단독으로 제기하기보다 국제사회가 공감할 ‘노예제’나 ‘무국적자’ 문제 등을 탈북 여성, 해외 파견 노동자와 먼저 연결하며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과거 국제 여성 인권상을 받은 탈북 여성들의 견해를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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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여성기구(UN Women)는 현재 ‘젠더 기반 폭력 추방을 위한 16일의 캠페인(16 Days of Activism against Gender-Based Violence)’을 펼치고 있습니다.
1991년부터 해마다 이맘때면 열리는 이 행사는 11월 25일 ‘국제 여성폭력 추방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부터 29일 ‘국제 여성인권 수호자의 날(International Women Human Rights Defenders Day)’을 거쳐 다음 달 10일 ‘세계 인권의 날’까지 16일 동안 전 세계 여성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특징입니다.
시마 바후스 유엔 여성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성명에서 올해 주제를 ‘세상을 주황색(오렌지)으로: 지금 여성 폭력을 끝내자’로 정했다며, “주황색은 폭력이 없는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바후스 사무총장] “For 2021, the theme is, "Orange the World: End Violence Against Women Now!"."Orange" symbolizes a brighter future, free of violence. I welcome and urge you to participate.
바후스 총장은 “보안과 존엄, 평등, 정의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는 여성 인권은 국제법의 핵심 원칙”이라며 “여성의 인권이 보장될 때 모든 인간의 삶이 혜택을 받고, 이 권리가 침해될 때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9일 ‘국제 여성인권 수호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전 세계의 용감한 사람들에게 미국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동반국(파트너)과 동맹과 협력해 다양성과 공평성, 포용성,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정치와 공공 생활에서 여성에 대한 제도적 장벽을 해소하는 등 전 세계 민주주의와 사법제도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증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 성명] “We will work with partners and allies to advance diversity, equity, inclusion, and accessibility, and increase the representation of women in democratic and justice systems around the world, including by addressing systemic barriers against women in politics and public life.”
한국의 탈북 여성 1호 박사 출신으로 지난 2010년 국무부로부터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이애란 북한인권 탈북단체 총연합 상임대표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과 국제적 관심이 모두 악화됐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 대표는 29일 VOA에, 유엔의 지적처럼 북한 지도부의 국경 봉쇄 등 과도한 코로나 대응으로 “주민 생계의 80%를 책임지는 여성들의 장사 활동과 삶이 모두 악화됐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 개선 문제, 중국에서 인신매매된 탈북 여성 구출 활동도 모두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졌다며, 북한 인권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을 지적했습니다.
[녹취: 이애란 박사] “일단 무관심이 확장됐다고 해야 할까요? 정부가 그것(북한 인권)을 은폐하고 그쪽에 대해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려는 정황도 있고, 또 전반적으로 한국 내 인권 상황이 안 좋아지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신경 쓸 형편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남북 관계 개선에 올인하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물론 정부가 지원하는 통신사 등 언론 매체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 보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기류 때문에 “기업과 시민들도 정부 눈치를 보거나 언론 노출이 적어 북한 인권, 탈북민 단체들에 대한 기부를 꺼린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특히 “인류 보편적 사안인 인권을 정치로 보는 시각이 지난 몇 년 동안 더 광범위하게 퍼졌다”며 지난 2019년 국회 통일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문제를 제기했다가 여당 의원들로부터 “정치하지 말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애란 박사] “그렇게 해서 말을 못 하게 하는 거죠. 정치적 사안으로 밀어붙여서 편 가르기를 하고 말을 못 하게 한단 말이에요. 저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 문제를 얘기했고 북한 체제가 나쁘다고 얘기했지…”
이 대표는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옛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금도 중국에서 화상 채팅 업소와 시골로 팔리는 탈북 여성들이 겪는 인권 유린이 다르지 않다며, “국제사회는 이를 인신매매로 강하게 비판하지만, 한국에서 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 “극우”란 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018년 영국의 ‘아시아 여성상’과 2020년 국제앰네스티가 용기 있는 인권 운동가들에게 수여 하는 ‘앰네스티 브레이브 어워즈’를 받은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도 이 문제를 지적하며 당사국인 “한국이 북한 여성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면 탈북민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생계 때문에 탈북민들이 북한 인권 운동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현실, 한국 통일부나 미국 기관으로부터 지원 기금을 받는 단체나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내기 힘든 현실이 어려움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대표는 북한 여성 인권 문제를 단독으로 제기하는 것보다 국제사회가 중점을 두는 ‘노예’와 ‘무국적자’ 같은 주제와 북한 인권 문제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제기할 때 관심이 더 높아진다며, 영국과 유럽에서 이런 활동에 더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 인권 행사에 적극 동참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목적으로 영국에서 지난주 시작한 ‘젠더 기반 폭력 추방을 위한 16일의 캠페인 첫날 행사에 참석해 북한 여성 폭력 문제를 제기했고, 유럽 기독교인들의 활동에 동참하며 자연스럽게 북한 여성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지금은 지금대로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로 이 (북한 인권 문제) 문제를 부각해서 나가면 전 세계적 네트워크들과도 연결을 많이 가질 것 같아요. 북한 여성 인권 문제를 따로 취급하려면 너무 힘들거든요.”
박 대표는 또 유엔과 정부, 민간단체들이 해마다 북한 인권과 여성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개선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북한 내부 문제를 먼저 제기하기보다 인신매매 피해를 당한 탈북 여성과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 등 북한 밖에 있는 북한인들의 인권 문제부터 제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이렇게 하기보다 무국적 여성들의 인신매매, 무국적 아동! 또 해외 노동자 문제도 노동자들이 여권을 가지고 나왔지만 다 회수되고 본인들의 손에 없잖아요. 여권 자체가 국경을 넘기 위한 수단일 뿐 이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렇게 국제사회와 같이 나란히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
박 대표는 이렇게 국제사회가 공감할 사안들부터 적극 제기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 , ‘노동 착취’, ‘인신매매’ 의 심각성을 자연스럽게 제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