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증언하고 개선 활동을 하는 탈북민들의 노력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언어 장벽 등으로 한계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유창한 영어와 국제 지식으로 무장한 탈북민 운동가들이 크게 늘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1997년 9월 26일, 미국 상원에서 탈북민 최초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증언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최주활 전 북한 인민군 상좌와 고영환 전 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이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녹취: 고영환 전 북한 외교관] “첫 번째는 강력한 사상교양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 사상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최주활 전 상좌] “아까 고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인권 문제입니다. 인권 문제! 정치범수용소에서 20만 명 이상이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고 또 산간벽지에 추방되는 성원들이…이런 현실을 빨리 민주적으로 폭로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 다음에 식량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e number one of them of cause is human rights…”
이후 1999년에 북한 15호 요덕관리소(정치범수용소) 출신 강철환 씨와 관리소 경비원 출신 안명철 씨, 이순옥 씨 등이 미국 의회에서 증언했고 이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비롯해 다양한 배경의 탈북민이 지난 20여 년 동안 이곳 워싱턴을 비롯해 여러 국제무대에서 증언을 지속했습니다.
25년 전 미국 최초의 탈북민 청문회 증언을 주도했던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 의장은 1일 VOA에, 최근 유창한 영어와 실력으로 무장한 젊은 탈북민들이 국제 행사에서 증언하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숄티 대표] “It's great! It's wonderful! In the TED Talks, we hear about people that got involved in the North Korean rights movement simply because… they heard these compelling stories.”
초창기에는 일부 엘리트 출신 또는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민이 증언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배경의 탈북민들이 북한 인권에 관여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강연 행사인 TED 강연에서도 탈북민들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실제로 TED 행사에는 최근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 행사에서 연설한 박지현 씨를 포함해 이현서, 박연미, 조셉 김, 박은희 씨 등 적어도 탈북민 5명이 유창한 영어로 김씨 정권의 폭정과 참혹한 인권 상황에 관해 증언했습니다.
이 가운데 이현서 씨의 증언은 1일 현재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1천 87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나머지 영상도 수백만 건을 기록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녹취: 이현서 씨 TED 강연] “When I was young, I thought my country was the best on the planet and I grew up singing a song northing to envy…”
이와는 별도로 영어로 유튜브 방송을 하는 탈북민이 10여 명에 달하며, 최근 유엔과 미국, 유럽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 관련 행사에 통역 없이 영어로 증언하는 탈북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미국의 명문대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한 박연미 씨는 앞서 VOA에, ‘유튜브’란 플랫폼과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 자유 세계 경험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연미 씨] “유튜브가 문을 열어준 것 같아요. 메인스트림 쪽으로 갈 수 있게! 특히 젊은 층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니까. 과거에는 박상학 씨, 강철환 씨 같은 분들이 하시다가 이제는 젊은 친구들, 영어도 많이 하는 친구들이 하니까 북한 인권 문제에 젊은 층도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다행히.”
1990년대 초창기부터 황장엽 전 비서 등 워싱턴을 방문한 주요 탈북민들의 통역을 담당했던 임종범 변호사는 3일 VOA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탈북민들이 늘어 자신의 역할이 줄었지만,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종범 변호사]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탈북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고, 정권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자꾸 변화가 있어야 하고, 그 변화를 내부에서 만들 수 없으면 외부에서 만들어야 하고 외부에서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죠.”
임 변호사는 “최근의 탈북민들은 과거와 달리 명확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게 특징으로 보인다”면서도 과거 일부 탈북민이 자신의 과거를 일부 속이거나 과장해 북한 인권 운동에 걸림돌이 된 것처럼 탈북민 증언이 많아질수록 진실을 분별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오는 5월에 실시될 영국의 지방선거에 보수당 후보로 재출마하는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북한 인권에 관해 연설할 때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예를 들면 21세기 현대판 노예제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18세기 때 노예제도를 생각하지 지금도 노예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해요. 그래서 윌리엄 윌버포스가 옛날에 당시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일했던, 그때 흑인들 자체를 노예로 보지 않았지만 선박 안에 묶여 참혹하게 당했잖아요. 선박 자체가 하나의 감옥이잖아요. 북한 자체가 감옥인 것처럼 이렇게 비교하면서 얘기하니까 어떤 분들은 쉽게 이해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돌아가는 정세를 공부해야만 거기에 맞춰서 같이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인권을 하려면 북한만 보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같이 엮어서 나가야면 동떨어지지 않고 맞춰서 갈 수 있더라고요.”
인신매매와 강제북송, 투옥 등 엄청난 역경을 극복한 박 대표는영어가 북한 인권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책에서 큰 영감과 도전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대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책을 읽다가 청년 시절 한성감옥에서 영어를 몰래 배웠다고 했잖아요. 영어를 배우니까 세계가 보인다고 하셨던 말씀이 깊이 공감이 갑니다. 영어를 배우니까 또 다른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공부를 해야겠다…”
박 대표 등 여러 탈북민은 이 전 대통령이 유창한 영어로 미국에서 신문 기고와 책 집필 등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독립의 필요성을 알려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에 영향받은 미국 젊은이가 한국전쟁에서 많은 북한인들을 살렸다는 VOA 보도를 보며 “북한 인권 운동을 독립운동처럼 펼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전쟁 흥남철수 때 수많은 북한 피난민들을 살렸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 전 제독은 2년 전 VOA와의 인터뷰에서 청년 시절 이승만 박사의 글 등을 통해 한국이 “외세 침입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정통성을 보존해왔고 자유를 지켜온 놀라운 민족인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자신에게 머나먼 나라가 아니었다”며 “한국전 참여 의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헌신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었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을 비롯해 많은 탈북민이 영어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민간단체 ‘Connect North Korea’, 미국인 케이시 라티그 씨가 한국에서 탈북민들의 영어 등 역량을 돕는FSI 등 “뒤에서 조용히 돕는 이름 없는 영웅들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랑의 손길과 협력, 탈북민들의 강인한 의지가 북한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