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무력시위를 멈췄던 북한이 20일 올림픽이 폐막하면서 또 다시 미사일 발사 등 도발 카드를 꺼낼지 주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의 철회 카드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지난달 5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를 시작으로 같은 달 30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며 한반도 긴장 수위를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우방인 중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개막한 이달 들어서는 무력시위를 자제한 채 내부 결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 기간 중 공개활동도 평양 화성지구 1만 세대 주택 건설 착공식 참석과 삼지연시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 기념 중앙보고대회, 함경남도 연포온실농장 건설 착공식 참석 등 모두 민생 관련 행보였습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인 광명성절 80주년을 맞아 예상됐던 대규모 열병식도 없었고 대외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이 막을 내리면서 북한의 무력시위 재개 가능성에 관련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국 청와대는 지난 20일 서훈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열고 올림픽 폐막 후의 한반도 정세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조속히 대화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유관국과의 협의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8일엔 한국과 중국의 북 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전화 협의를 갖고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미-한 군 당국도 올림픽 폐막 이후 북한의 도발 행동 가능성에 대비해 감시태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2018년 자신들이 선언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 즉 '모라토리엄'의 파기를 시사한 바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압박한 메시지였지만 지난 12일 미-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에 대한 답이 없었다며 북한의 도발 강도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 생일인 4월15일 태양절을 도발의 정점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중거리 미사일 집중 발사나 군 정찰위성 발사, 핵물질 생산 활동 등 모라토리엄 파기 직전 단계의 도발 카드들을 연이어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음달 9일 시행되는 한국 대선 등은 고려 요인이 되기 힘들어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의 협상 결과에서 많이 실망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북한은 남한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목적과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고요. 지금 마이웨이를 가고 있는 거에요.”
다음달 4일에서 13일까지 베이징패럴림픽이 예정돼 있고 다음달 초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가 잡혀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 시기까지는 도발을 자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중국과의 우호관계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도발에 나서는 시점은 3월 중순 이후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양회 기간 앞뒤로 2주내에는 북한이 2018년 이후 미사일 발사라든가 이런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 온 그런 모양이 보이거든요. 또 패럴림픽도 올림픽의 일환이기 때문에 3월 4일에 시작해서 14일에 끝나거든요. 그래서 3월 14일부터 4.15 태양절까지 약 한 달여 기간이 북한이 만약 뭔가 계획이 있다면 그 계획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기간으로 잡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북한이 전략도발을 공식적으로 시사한 만큼 미국의 추가 대응도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입니다.
또 한국 정부가 최근 미-한, 미-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미국 측에 제안한 새로운 대북 관여 방안이 변수가 될지도 주목됩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설령 북한이 전략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미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나 미-한 연합훈련 중단을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연합훈련을 중단하게 되면 한-미 동맹 약화로 이어지고 그러면 한-미 동맹을 인도태평양 전략에 이용하고 싶어하는 미국 전략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고 제재 완화를 해주면 과연 미국 입장에서 그게 국내정치적으로 바이든에게 도움이 될까요? 저는 도움이 안된다고 보는데.”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 정부의 새로운 대북 관여 방안에 대해 미국이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보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모라토리엄 유지를 카드로 대북 제재 일부 완화와 같은 반대급부를 노릴 것이라며 만약 그렇게 되면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걸 바이든 행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바이든 행정부 같은 경우는 북한을 불신하기 때문에 일단 북한 페이스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정책 원칙이 그 안에 움직이고 있다는 거죠. 반면 북한은 모라토리엄을 폐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최대 수준까지는 했죠. 그럼에도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의 남은 카드는 결국 ICBM이죠.”
홍민 실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친서가 상황 악화를 저지할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홍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6월 당 중앙위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보낸 첫 메시지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표명할 경우 북한도 응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홍 실장은 바이든 행정부로선 북한에 선제적인 양보안을 내놓지 않더라도 김 위원장이 당시 전원회의에서 언급했던 국가 존엄과 발전, 안전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정도의 답신은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준락 한국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한 군 동계훈련과 행사 준비활동에 대해서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설명할만한 변화된 활동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군 당국은 또 지난달부터 포착된 열병식 준비가 여전히 초기 단계이며,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과 3천t급 잠수함 등을 건조하는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없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